[역경의 열매] 강국창 (2)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어머니의 밥상철학

태백공업고등학교 시절의 필자. 강원도 태백에서 유일한 고등학교였다.


어머니는 밥에 유독 민감하셨다. 광산에서 일하는 남편 월급으로 열 한 식구의 삶을 꾸려가는 입장이었기에 늘 먹는 것에 예민하셨던 것이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신념이 철저한 분이셨다.

우리 집 밥상은 3개였다. 하나는 아버지를 위한 밥상, 또 하나는 아들 일곱이 둘러앉아 먹는 밥상, 나머지는 어머니를 비롯한 여자 형제들이 먹는 ‘맨바닥’ 밥상이었다. 사회 전반적으로 가부장 문화가 팽배했던 시절을 반영하는 풍경이었다.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은 밥 먹을 때였다. 식욕은 늘 왕성했고 음식은 늘 부족했다. 식사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조용했다. 우적우적 밥 씹는 소리, 김치 씹는 소리만 들릴 뿐 별다른 대화도 없었다.

보릿고개라 해서 남들은 밥을 거르는 때였으나 그나마 아버지가 석탄공사에서 근무해 쌀을 배급받았다. 굶지 않을 만큼 쌀이 있었는 데도 밥은 늘 부족했다. “어머니, 저 밥 좀 더 주시면 안 돼요?”

누군가 용기 내어 한마디 꺼냈다가는 0.5초도 안 돼 어머니의 반격이 시작됐다. “밥 없다. 그만 먹어라. 넌 뭘 잘한 게 있다고 밥을 그렇게 먹냐. 공부는 서 푼어치하고 그렇다고 일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고!”

밥 먹을 때마다 어머니가 주문처럼 꺼내시던 말씀, “공부는 서 푼어치도 안 하면서 밥은 많이 먹는다” “일도 제대로 안 하면서 밥만 축낸다”는 말이 가슴에 콕콕 박혔다. ‘아, 밥이라는 것은 공부나 일을 하고 난 뒤에 그 대가로 먹어야 하는구나’ 하는 인식이 그때 생긴 것 같다.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는 성경 말씀을 떠올리면 어머니가 잘못된 말씀을 하신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훗날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면서 데살로니가후서에 이미 같은 말씀을 하고 계셨음을 알고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어머니의 ‘밥상 철학’ 덕분에 나의 유전자 속엔 ‘성실’ 인자가 깊이 새겨진 것 같다.

어머니는 끊임없이 일하셨다. 아버지 홑벌이로는 살림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좌판에 농작물을 펼쳐 놓고 파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러다 보니 집안일이나 잡일 등을 자식들이 맡아 하는 건 당연했다. 나도 피할 수 없었는데, 그중에서도 돼지 밥을 수거해 오는 일이 가장 곤혹스러웠다.

“국창아, 가서 돼지 밥 가져와라.” 이런 명령이 떨어지는 날은 재수 없는 날이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버려진 음식물을 수거해 가져와야 하는데, 길게는 30분씩 걸리는 곳까지 다녀와야 했다. 양동이를 들고 다니느라 힘들 뿐만 아니라 창피하기도 했다. 한번은 일하지 않으려고 벽장 속에 전구를 설치하고 바둑과 장기를 두고 있었는데, 어머니한테 걸려 장기판과 바둑판이 아궁이 불 속에 던져지는 것을 봐야만 했다.

그런 어머니도 공부만큼은 인정해 주셨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학교 공부를 곧잘 했던 내가 공부를 하고 있을 때는 일을 맡기지 않으셨다. 다른 형제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공부를 해야 인정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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