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기타

[김기석 목사의 빛을 따라] 폐허를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



상황이 암담할 때면 사람들은 문제의 크기에 압도되게 마련이다. 살다 보면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에 직면할 때가 있다. 거대한 바위가 길을 막고 있을 때 사람들은 그 바위를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레 판단한다. 그러나 바위를 움직일 수는 없지만 바위를 잘게 쪼개며 제거할 수는 있다. 일단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르한 파묵은 소설 쓰기를 가리켜 ‘바늘로 우물 파기’라 했다.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열정과 인내가 있기에 그는 진실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부작침(磨斧作針),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말이다. 세상에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처럼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일에 뛰어든다.

폴란드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는 ‘신세계’라는 시에서 현실을 면밀히 살핀 후에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정상적인 것들은 가장 짧게 지속되고/ 비정상적인 것들을 이해하기는 너무 쉽고/ 순응하기는 더욱더 쉽다/ 그 쉬움이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사람들은 쉽게 현실에 순응한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알고 산다. 순응 혹은 적응은 지혜가 아니라 비겁이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지금 이 자리에서 새로운 세상을 시작해야 한다. 믿음의 반대말은 불신이 아니라 염려와 근심 그리고 체념이 아니던가.

몇 달 전 북촌갤러리에서 열린 ‘시리아愛봄’ 사진전이 떠오른다. 내전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시리아 상황을 알리기 위한 전시였다. 사진은 인간의 잔혹함 파괴성과 더불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의 숭고한 모습을 담고 있다. 포연이 피어오르는 마을 건물의 잔해에서 구출된 아이를 품에 안고 달리는 사람들, 아비규환의 상황에 내몰려 안전한 곳으로 탈출하려는 사람의 물결 등이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조용히 희망을 만드는 이들이 있다. 흰색 헬멧을 쓰고 시리아군의 공격으로 파괴된 현장에 출동해 긴급 구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었다. 흰색 헬멧은 그 땅에서 시작하는 희망의 상징이다. 튀르키예와의 국경 지대 인근에 세워진 난민 캠프도 볼 수 있었다. 직접 사진을 찍기도 하고 또 다른 이의 사진을 선정하기도 한 압둘와합은 참혹한 느낌을 자아내는 사진은 일부러 배제했다고 말했다.

난민들은 정말 필요한 것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학교라며 학교를 세워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은 미래를 위해 파종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 세우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1년 안에 완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난민촌 인부들은 3개월 만에 지었다. 자기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기에 24시간 3교대로 일했던 것이다. 난감한 상황에 몰려 있으면서도 해맑은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서로 돌보며 살았던 기억, 그리고 그곳에서 배웠던 소중한 가르침을 통해 더 나은 삶을 꿈꾸게 될 것이다.

폐허 더미를 치우며 희망의 밭을 가꾸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사람은 보람을 먹고 사는 존재이다. 보람은 영적 존재인 인간의 일용할 양식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심각할 정도로 분열돼 있다. 신뢰의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서로 다른 진영에 선 사람들은 자기와 입장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적대적인 말, 냉소하는 말, 비아냥거리는 말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말과 감정의 찌꺼기들이 켜켜이 쌓여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바로 그 자리야말로 우리가 새로운 세상을 시작해야 하는 자리이다. 흰색 헬멧이 시리아 난민들의 희망이듯,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새로운 세상의 단초가 돼야 한다. 참빛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현실을 뚫고 솟아오르는 법이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