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강국창 (10) 달콤한 국회의원 꿈 깨어나 보니 쑥대밭 된 공장

강국창(맨 뒷줄) 장로가 신혼 시절인 1973년 아내와 어머니, 남동생들과 함께 사진을 촬영했다.


“당신은 아직 나이도 젊잖아. 다음에 기회가 또 있을 거야. 다음번 공천권은 꼭 받도록 힘써주겠네.” “아닙니다. 됐습니다. 저는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더 이상 태백에 머물 필요가 없었다. 그날로 짐을 싸서 상경해 집으로 돌아왔다. 마치 한낮의 꿈을 꾼 것 같았다. 도대체 무엇에 홀려 있었는지 스스로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과연 내가 최선을 다해야 할 일이 이 일이었는가.’ 대답은 ‘아니오’였다.

괜한 꿈을 꾸었고 다른 사람이 심어준 허황한 꿈을 잡으려고 허비한 시간이 아까워 미칠 지경이었다. 패잔병이 된 건 같은 이 기분, 사실 정치계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었다. 잠깐 마음의 눈이 멀었던 것 같다. 어쨌든 국회의원을 향한 꿈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것은 안타깝게도 또 다른 재앙의 전주곡이었다.

“사장님, 상무님이 회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사라졌어요. 지금 회사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공장에 돌아왔을 때 기다리는 소식은 절망적이었다. 국회의원에 출마한답시고 회사를 비운 시점이었다. 재정 회계를 맡고 있던 상무가 있는 대로 수표를 발행한 뒤 사라졌다. 발행된 어음이 돌아오는 시기에 돈을 막지 않으면 부도가 날 상황이었다. 나는 그 길로 은행으로 뛰어갔다.

“은행장님, 부도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강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까지 발행된 어음을 막지 않으면 회사가 부도나게 생겼습니다. 아니 어쩌자고 그런 큰일을 다른 사람한테 맡기셨어요?”

순간 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아 한동안 멍하게 서 있었다. 문제를 일으킨 상무는 나보다 열 살이나 많은 형님이었고, 그 분야에 특화된 적임자였다. 무척 꼼꼼하고 철저한 사람이라고 신뢰했다.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긴 게 불찰이었다.

“사장님, 은행 마감 시간이 오후 5시인데 그때까지 어음을 다 막지 못하면 큰일 납니다.” 은행 측에 마감 시간을 7시까지 미뤄 달라고 사정했지만 소용없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나는 은행에서 회사의 최종 부도 처리를 지켜봐야 했다. 휴짓조각으로 바뀐 어음을 들고 아우성치는 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힘차게 돌아가던 공장의 기계들이 뚝 멈춰버린 장면도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눈 뜨고 코 베였다’는 것이 바로 이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하루아침에 공장도, 사람도, 돈도 잃은 빈털터리 신세가 된 것이다. 힘없이 터덜터덜 집을 향해 가는데 저 멀리 가로등 밑에 웬 사복 입은 남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았다. 순간 ‘형사다’ 하는 직감에 몸을 숨겼다. 당시 부정수표 단속이 시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수표를 발행한 회사의 대표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집을 지척에 두고도 들어갈 수 없는 신세, 처참하고 비참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중견 기업의 대표로 국회의원이 될 생각에 어깨에 힘을 주고 다녔건만, ‘아, 일장춘몽이 이런 것이구나’ 절감했다.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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