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강국창 (11) 하루하루 고통 속에 떠도는 삶 “아… 죽고 싶다”

강국창 장로(뒷줄 오른쪽 두 번째)가 1980년대 초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집에서 아내와 두 자녀, 부모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는 회사 부도 후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당분간 집에 들어가는 일은 엄두도 나지 않고, 남에게 넘어가게 된 회사는 더더욱 갈 수 없었다. 그토록 많았던 주변 사람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지만 찾아갈 만한 사람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동안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 깊은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도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친구였다. 나의 모든 모습을 보았던 친구, 그 친구에게 만큼은 내 처지가 덜 부끄러울 것 같았다. 그 친구는 하루 아침에 처량한 신세가 된 나를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맞아주었다.

“당분간 여기서 지내라.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잖냐.” 고마웠다. 그 친구의 위로가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신세를 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여간 눈치가 보이는 게 아니었다.

밤이면 예전에 살던 집 근처를 배회하며 멀찌감치 서서 집만 바라보다가 걸음을 돌리곤 했다. 아내와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부터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솟구쳐 올랐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다 내 잘못이다.’ 마음 속으로 이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부도난 공장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고, 수백 명 되는 직원들도 뿔뿔이 흩어졌다고 했다. 손때 묻은 기계들은 방치돼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마음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쓰라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철저하게 혼자가 되고 나니 오히려 내 자신이 더욱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곱씹고 또 곱씹었다. 문제는 세 가지로 압축됐다. 먼저 성공에 너무 취했다는 것이다. 이렇다 할 경쟁업체 없이 블루오션을 개척해 승승장구 하다 보니 성공에 너무 익숙해졌던 것 같다.

게다가 과욕을 부렸다. 불과 몇 년 만에 부품을 개발해 소위 ‘대박’을 터뜨리고 나니 우쭐해졌다. 공장 규모도 너무 크게 늘렸고, 인력도 방만하게 운영했다. 겉모습에 취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시선을 즐겼던 것 같다.

특히 사람을 너무 믿은 것이 최대 실수였다. 사람은 존귀하다. 하지만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는 존재이기에 믿음에도 절제가 필요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회사 부도에 결정적 요인이 인재 등용의 실패였던 탓에 이 부분은 훗날 회사 경영에도 영향을 끼쳤다.

살아보니 성공과 실패는 종이 한장 차이였다. 불어오는 바람에 살짝 뒤집히면 성공과 실패가 바뀌는데, 성공에 취하다 보면 감각이 둔해진다. 그래서 기업가는 성공과 실패에 너무 둔해서도 안되지만 너무 예민할 필요도 없다.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고의 방책이다.

‘아… 죽고 싶다. 내가 더 이상 뭘 할 수 있을까?’ 날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부정수표 단속으로 도망자 신세가 되어 여기저기 떠도는 삶은 하루 하루가 고통이었다. 그때마다 가족과 형제들이 눈에 아른거려 죽음의 늪에서 나를 간신히 건져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대뜸 이런 제안을 했다.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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