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보면서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된 생명을 생각한다

‘영화로 보는 세상’의 저자 김양현 목사가 지난달 12일 제주사랑의교회 중고등부 여름수련회에서 21세기와 영화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제주사랑의교회 제공




“현대는 영화의 시대입니다. OTT(Over the Top) 서비스 대중화로 이제 안방에서 영화를 시청합니다. 넷플릭스는 한국 드라마를 론칭해 전 세계 흥행 1위를 이끌기도 했고, 후발주자 애플TV와 디즈니+가 안방극장을 두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오늘 우리의 삶에 깊숙이 자리하고 우리의 시간을 점유합니다. 영화란 매체의 속성을 이해하고 그 저변에 깔린 메시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턱대고 보는 영화가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로 보는 세상’(한국NCD미디어)의 저자, 김양현(51·아래 사진) 제주사랑의교회 협동 목사를 지난달 20일 제주시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김 목사는 우리 시대 압도적 매체인 영화를 바탕으로 다음세대와 밀착된 소통을 해왔고 이를 책으로 기록했다. 한 손에는 영화, 다른 손에는 책을 들고 사역에 임하는 그리스도인이다.

김 목사는 2004년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고신 소속 브니엘여고 교목으로 부임해 종교 과목을 가르쳤다. ‘어떻게 하면 수업 시간에 졸기 일쑤인 청소년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까’를 고민하다가 영화란 매체를 택했다. 학생들과 최신 개봉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를 비평했다. 김 목사는 최근까지 제주의 기독교 대안학교인 ‘나무와 숲’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이어왔다. 부산 CBS에 이어 제주 CBS에서 ‘하울 아빠의 영화 이야기’ 등의 코너를 맡아 12년간 500여편의 영화를 소개했다. 목회자들이 쉬는 월요일 아침을 택해 일주일에 1편씩 조조 영화를 섭렵해온 그는 특히 청소년들이 열광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 주목한다.

“마동석이 길가메시로 연기한 ‘이터널스’를 주제로 교회 수련회에서 청소년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건 ‘메타 내러티브’, 즉 이야기를 초월한 대서사시 장르입니다. BC 7000년 전 인류 문명이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외계에서 온 이터널스가 등장하고, 이들이 고대 중동의 바벨론 문화, 고대 인도와 아스테카 문명을 건설한 자들로 나옵니다. 성경 속 느부갓네살 왕의 공중 정원 같은 장면을 복원해 보여줍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20세기 중후반까지 모든 것을 해체해 작은 이야기로 잘게 쪼개 다뤄왔는데, 세계는 이에 대한 반발로 다시 거대한 서사시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성경도 톰 라이트, 크레이그 바르톨로뮤 같은 신학자들의 해석에 의하면 거대한 서사시입니다. 물론 마블의 세계관과는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바르톨로뮤와 마이클 고힌이 공동 저술한 ‘성경은 드라마다’(IVP)에 의하면 성경은 창조의 1막, 타락인 2막, 구약 시대인 3막,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4막, 제자들로부터 우리까지 교회의 선교가 펼쳐지는 지금의 5막, 그리고 계시록을 통한 대단원인 6막으로 구성돼 있다.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드라마이자 대서사시로 보는 세계관이다.

현대판 신화를 만들어 내는 마블은 이터널스를 통해 성경의 이런 서사시 구조를 차용하지만, 인간을 다루는 데 있어서 결정적 차이를 보인다. 캡틴 아메리카,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헐크, 블랙팬서 등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난 영웅주의, 즉 인간은 하찮고 불편하고 귀찮은 존재이고 이들을 언제까지 도와줘야 하냐고 푸념하는 슈퍼히어로들, 프리드리히 니체식으로 말하면 초인이 등장하는 구조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 인간 각자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존귀하게 창조된 생명이라고 강조한다. 상위 1%의 초인적 영웅만 조명되고 나머지는 그저 루저일 뿐이라는 세속화된 아메리칸 드림 자체가 거대한 사기극이란 점을 성경은 일깨워 준다.

영화로 다음세대와 소통하기 위해선 깊이 있는 책들을 독파해야 한다. 시인이자 ‘시네마 에피파니’(새물결플러스)를 저술한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는 김 목사 책에 대한 추천사에서 “영상 미학, 인물의 심리, 배경이 되는 종교와 역사 등 세세한 정보를 융합하고 비평하는 능력을 갖춰야 영화평을 쓸 수 있다”면서 “김 목사는 진리를 전하는 파레시아스트(parresiastes), 즉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는 자의 관점에서 영화를 본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제주에서 ‘과학과 신학의 대화’ 독서 모임을 이끌고 있다. 예장합동 예장고신 등의 목회자들과 대학교수, 관광 회사 CEO, 독립서점 대표 등이 구성원이다.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모여 발제하고 질문하고 토론한다. 양자 물리학자이자 성직자였던 존 폴킹혼의 저서 ‘쿼크, 카오스, 그리스도교’(비아)를 읽고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지점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자유의지를 발견하는 이야기를 나눴다. ‘기후 위기 시대의 도전과 교회의 응답’(새물결플러스)을 통해선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는 시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토론했다.

김 목사는 “마블은 타노스 데비안츠와 같은 악당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지만, 성경은 적을 미워하는 대신 포용하라고 말한다”며 “이런 관점들을 비교하는 책 ‘마블과 바이블’(가제)도 저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주=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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