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한마당] 수리남과 마약



수리남은 남미 북부에 있는 나라다. 국토 면적은 남한의 1.6배에 달하는데 인구는 서울 강서구 수준으로 60만명에 못 미칠 정도로 인구밀도가 낮다. 우리나라와는 거리도 워낙 멀고 경제 교류도 많지 않지만 6·25전쟁 당시 115명의 병사를 보내준 소중한 참전국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전쟁의 기억이 희미해질 즈음인 1988년에 다시 수리남이 한국인의 뇌리에 깊이 새겨지게 된다. 그해 열린 서울올림픽의 수영 종목 배영 100m 결선에서 무명의 수리남 선수 앤서니 네스티가 미국의 스타 매트 비욘디를 제치고 0.01초차로 금메달을 따냈다. 수리남에는 50m 풀 6개, 25m 풀 10개가 전부였기에 그의 금메달 수확은 서울올림픽 최대 이변으로 꼽혔다. 수리남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 수영부문 첫 흑인 금메달리스트라는 기록도 동반됐다. 네스티의 인간 승리는 인류의 제전을 풍요롭게 만들며 개최지 한국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에도 일조했다. 우리와의 접점은 적었지만 침략받은 나라를 도와주고 올림픽에서 감동을 안긴 수리남의 이미지는 좋았다.

21세기 들어서 양국 사이에 부정적 고리가 생긴다. 바로 마약이다. 국내에서 사기 행각을 저지르던 조봉행이 수리남으로 도주한 뒤 마약상이 됐다. 어느새 수리남 마약왕으로 부상했다. 대량 밀매를 위해 애꿎은 교포들을 속여 마약 운반책으로 동원해 막대한 피해를 안기기도 했다. 그의 범행을 모티브로 한 게 영화 ‘집으로 가는 길’과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이다. 2009년 당국이 조씨를 검거했지만 수리남은 마약 소굴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 이제는 한국도 수리남을 손가락질 할 처지가 못 된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마약밀수 단속량은 2017년 69.1㎏에서 2021년 1272.5㎏으로 18.4배, 마약사범은 같은 기간 719명에서 4998명으로 약 7배 급증했다. 불황으로 많은 이들이 좌절하면서 마약의 유혹에 노출될 소지가 있다. 마약은 개인, 가정, 사회를 좀먹는 독버섯이다. 국가적 대처가 필요하다. 훗날 ‘코리아’라는 마약 드라마가 나오기 전에.

고세욱 논설위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