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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은준관 실천신대 명예총장] “삶은 내 것 아닌 선물이자 은혜… 90 평생 따뜻한 손길에 이끌려왔다”

은준관 실천신학대학원대 명예총장이 지난 15일 경기도 고양 자택 서재에서 신앙고백록 ‘삶, 여정, 이끄심’을 펴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구순의 나이에도 새벽 2~3시까지 저술 작업에 집중하는 은 총장의 책상엔 새번역 성경이 놓여 있었다. 고양=신석현 포토그래퍼




6·25전쟁 당시 18세 나이에 학도유격대 통신대장으로 참전했다. 전쟁 후 감리교신학대를 거쳐 육군 군목 중위로 제대한 후 미국 듀크대와 버클리 퍼시픽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시카고 한인감리교회와 서울 정동제일교회에서 담임목사를 역임했다. 연세대와 감신대 교수로 기독교교육학 정립에 힘썼고 교수 정년 이후엔 또다시 목회와 신학이 결합된 실천신학대학원대 설립에 뛰어들었다. 90 평생을 신비롭고 거룩한 손길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다는 고백록 ‘삶, 여정, 이끄심’(동연)을 펴낸 은준관 실천신대 명예총장을 지난 15일 경기도 고양 자택에서 만났다.

‘국가유공자의 집’ 명패가 달린 자택 서재에서 마주한 은 총장은 정정했고 목소리가 우렁찼다. 청력이 조금 약해진 것을 제하곤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었다. 신학자와 교육자로 또 목회자로 살아온 90년 삶은 말 그대로 드라마였다. 손에 땀을 쥐며 책을 읽었다. 2005년 실천신대 설립을 위해 수차례 수억원을 헌금하고 지금도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낸 헌금 때문에 매달 이자를 갚고 있다는 은 총장은 “회고록이나 자서전이 아닌 하나님의 이끄심을 고백하는 신앙고백록”이라고 책을 설명했다.

-6·25전쟁, 미국에서의 신학 훈련, 정동제일교회 목회, 연세대 교수, 실천신대 총장 등 다이내믹한 여정입니다. 삶의 역동성에 견주어 책에선 극히 정제된 서술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실록과도 같은 문체로 삶을 돌아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삶은 내가 살지만, 그 삶은 내 것이 아닙니다. 삶은 주어지는 선물이고 은혜입니다. 성찰을 통해 여정을 돌아보고, 그 속에 숨어있는 의미를 찾는 과정입니다. 지난 90년의 삶은 ‘크신 손’이 이끌어 주신 여정입니다.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었던 전쟁과 죽음과 배고픔, 고독과 좌절로부터의 탈출은 제 힘과 제 지혜가 아니었습니다.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계신 분, 저는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제 삶을 이끄신 그분을 고백한 책입니다.”

-정동제일교회 목회는 어떠했습니까. 총장님께 목회란 무엇입니까.

“1970년대 정동교회 분위기는 차가웠습니다. 조선의 어머니 교회라고 하지만, 서울 특유의 양반 의식이 겹쳐진 무관심주의가 팽배했습니다. 목사는 그저 왔다가 가는 나그네였습니다. 감신대 교수를 하다가 청빙을 받았는데 75년 2월 첫 주일 부임 당시 살벌한 분위기로 사표를 내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자고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속회 심방을 하며 교인들의 영적 고갈 모습을 발견하고는 차마 그럴 수 없었습니다. 수요성서연구를 제안해 실행했는데 당시 정동교회 90년 역사에서 최초의 성서연구 모임이라고 했습니다. 교인들과 성경을 읽고 제가 역사적 배경과 신학적 의미를 해설했습니다. 그러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서연구를 통한 영적 각성이 에너지로 축적돼 주일공동예배, 젊은이예배, 성도 신학강좌 강화 등으로 발현됐고, 기도하는 집으로써 문화재예배당 개방, 근로 청소년을 위한 야학, 100주년 기념 건축 및 봉헌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목회자라기보다 교육자이지만, 목회는 목사가 하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사역이고 사도들이 이어받아 은사대로 행한 사역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는 만인제사장론의 종교개혁 정신을 1년에 한 번 구호 정도로만 생각하고, 여전히 목사와 평신도로 계급을 나눠 설교 지상주의에 빠져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성도 한 분 한 분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는 사역, 예배를 통해 부르고 교육을 통해 세우고, 선교를 통해 보내는 사역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대 실천신대 설립 준비 당시 ‘서구는 교회 없는 신학이 대세고 한국교회는 신학 없는 교회가 다수’라는 총장님 진단에 공감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일차적 책임은 신학대학원의 신학 교육에 있습니다. 500년 전 정해진 성서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의 체제가 이어져 왔는데, 신대원 졸업 후 목사는 목회 현장에서 예배 교육 선교를 넘어 디아코니아와 행정 등 실무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니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목회와 신학이 통합된 실천신대 개교를 준비한 이유입니다.”

-총장님은 지금의 한국교회가 어떻게 변화되길 바라십니까.

“교회 지상주의와 목회자 중심주의부터 탈피해야 합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은 선한 일을 하도록 주어진 직분일 뿐, 계급이 아닙니다. 교회 변화를 위해선 예배 설교 선교 봉사 이전에 성경 정독, 성경을 통한 하나님과의 대면이 우선돼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서 정독은 단락별 단절이 아닌, 내면에 흐르는 연결 지점을 포착하는 것입니다. 삶과 신앙, 교회와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행위입니다. 구약과 신약에 흐르는 하나님의 구원을 순례해야 합니다. 구원사에는 5C라는 구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Creation),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Covenant),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 구원(Christ), 그리스도의 지상 증인 공동체(Church),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완성(Consummation)입니다. TBC성서연구원을 통해 지금도 이를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교회학교를 ‘어린이청소년교회’로 바꾸는 일이 필요합니다. 어린이 청소년을 객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삶과 신앙의 주체로 대해야 합니다. 신앙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형성되는 것입니다. 새번역 성경으로 교사 학부모 교인 목회자와 함께 어린이 청소년도 성경 정독을 해야 합니다. 평촌감리교회 이천현대교회 과천은파교회 등 함께 정독하고 의미를 나누는 교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총장님의 90년 인생을 돌아보는 신앙고백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무엇입니까.

“삶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늘 함께하시며 미래로 이끄시는 따뜻한 손길, 저는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한국교회는 이 땅에 남아있는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세계에 하나님 나라를 증언할 마지막 보루입니다. 신앙과 목회는 그러나 열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신앙은 지혜와 지식을 통해 구현돼야 합니다. 신학이 있는 교회와 설교와 교육이 행해지면 좋겠습니다.”

고양=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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