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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동철 칼럼] 중환자실에 들어간 ‘기후변화 1.5도’



세계 곳곳에서 기후재난 빈발
대재앙 전조인 것 같아 우려돼

온난화 늦춰야 하는데 각국의
탄소 감축 노력은 턱없이 미흡

경제 성장하면서도 온실가스
배출은 줄어드는 지속 가능한
산업·소비구조로 전환 서둘러야

2004년 6월 개봉된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는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경고한 재난영화다. 급격한 지구 온난화로 인해 극 지방의 빙하가 녹고 바닷물이 차가워져 해수 순환 시스템이 붕괴되자 일정 위도 이상 지역이 빠르게 극한의 찬공기와 빙하로 뒤덮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얼어 죽는다. 영화는 꽁꽁 얼어붙은 뉴욕에 고립됐던 생존자들을 구출하고, 인류가 폐허를 딛고 새 출발하는 장면으로 끝나지만 기후 대재앙이 현실이 된다면 과연 인류는 새 출발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영화 속의 이야기일 뿐이고, 벌어져도 아주 먼 훗날의 일이라 여겼던 기후 재앙이 실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국토 3분의 1이 물에 잠긴 파키스탄 대홍수, 500년 만이라는 최악의 유럽 가뭄, 50도까지 치솟아 65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인도와 파키스탄의 폭염, 우리나라 수도권을 강타한 115년 만의 폭우 등 빈발하는 기후 재난들은 그 자체도 두렵지만 더 큰 재앙의 전조인 것 같아 우려스럽다.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이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해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채택했지만 온난화 속도를 늦추기에는 역부족이다. 파리협약에서 대기 평균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로 제한하기로 하고 각국이 국가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NDC)를 자발적으로 설정해 실천하기로 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가 최근 공개한 ‘2022년 글로벌 기후 보고서’ 초안에 따르면 올해 기온은 산업화 직전과 비교해 1.15도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추세라면 파리협약 목표치를 달성하기 힘들다고 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런 현실을 두고 “1.5도가 중환자실에 들어갔다”고 개탄했다. 그는 또 파리협약 이행을 점검하기 위해 지난 7일 이집트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7) 정상회의에서도 “기후변화가 초래한 현 기후 위기 상황이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접근하고 있다”며 “지옥행 고속도로에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것 같다”고 경고했다.

‘1.5도’는 지속 가능한 지구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수해야 할 마지노선이다. 기온이 그 이상으로 오르면 연쇄 상승 작용을 일으켜 지구 온난화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임계점인 1.5도가 중환자실에 들어간 셈이니 상태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전 세계가 절박감을 갖고 공동 대응해야 한다. 무임승차하려 하거나 감축 시늉만 하는 나라들이 많을수록 기후위기 대응은 겉돌고 결국 인류 공멸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정부 때인 지난해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산업계를 중심으로 과도한 목표라며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지만 가야 할 길이다. 유럽연합(EU)이 탄소 감축에 소극적인 국가의 제품에 강제 부담금을 매기는 탄소국경세를 2025년부터 본격 실행하기로 했고 미국도 비슷한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가격 경쟁력이 약해지거나 수출 길이 막히는 시대가 머지않았다. 국제사회의 탄소 감축 압박은 갈수록 거세질 게 틀림없다.

경제는 성장하면서도 탄소 배출량은 줄어드는 탄소 중립 선진국들의 길을 우리도 따라가야 한다.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는 것은 필수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현재의 산업구조, 소비구조도 저탄소 구조로 바꿔가야 한다. 탄소 등 온실가스는 에너지를 생산·소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만큼 에너지를 절약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데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 과소비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는 에너지 요금체계를 원가와 연동시키고 수익자 부담 원칙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할 필요도 있다. 남발되고 있는 각종 특례 할인제도를 정비하고 대신 취약계층은 재정으로 별도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

지구는 기성세대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우리의 자녀와 그 이후 세대들도 누려야 할 터전이다. 올해 19세인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4년 전 폴란드에서 열린 COP24에서 각국 정상급 지도자들을 향해 “당신들은 자녀를 가장 사랑한다 말하지만,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모습으로 자녀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투모로우에서 본 것 같은 끔찍한 지구를 후손들에게 넘겨줘서는 안 된다.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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