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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욱의 슬기로운 금융] 시장 상황 간파한 연준 정책처럼… ‘작은 불씨’ 꼼꼼히 살펴야





지난 한 달간 커다란 사고가 있었다. 상대방 입장에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레고랜드 지급보증 철회 건만 해도 그렇다. 강원도는 그저 부채 부담을 줄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지금까지도 국내 자금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뒤늦게 “본의가 아니었다”라고 했다는데 ‘뭐가 뭔지 몰랐다’라는 말로 들린다.

흥국생명발 금융시장 혼란도 마찬가지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거래 상대방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한 회사의 문제가 한국 채권 전체의 문제로 비화되고 말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마주하고서야 번복했는데, 진작에 좀 더 상황을 살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에 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시장의 조그마한 징후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대응하고 있다. 예리한 관찰로 미국 국채시장의 취약성을 간파해낸 연준은 이를 금리정책에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정책 스탠스 조절을 예고한 미 연준

지난주 후반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가 예상(7.9%)보다 낮은 7.7% 상승에 그친 것으로 나오자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금융시장이 환호작약했다. 나스닥이 7% 상승했는가 하면 원·달러 환율도 하루에 40원이나 떨어졌다. 시장은 인플레 둔화를 금리 인상 종료로 바로 연결시킨 듯 들떠 있다. 그러나 이는 희망이 불러낸 섣부른 오해에 가깝다. 적어도 금리 인상이 조만간 중단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미국 물가 수준은 연준이 목표로 하는 2%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금리 조정에 경제가 실제로 반응하기까지는 대략 6개월~2년 정도 시차가 걸리는 점을 감안한다면, 내년 봄까지는 금년도 금리 인상 효과를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플레를 잡기 위한 연준의 금리 인상은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다만 그 속도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한 템포 느려질 것이다. 연준도 이미 지난번 금리결정회의 결정문을 통해 이를 예고한 바 있다.

#시장을 예의주시하는 연준

인플레가 잡힌 것도 아니고 경기가 침체에 빠진 것도 아닌데, 연준은 왜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선언한 것일까? 해답은 미국 국채시장에 있다.

때는 지난달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국채 급등 사태가 진정돼 가던 지난달 13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뜬금없이 미국채의 조기 상환(buy back)을 언급했다. 인플레를 잡기 위해 긴축을 해도 모자랄 판에 국채를 되사주겠다는 발언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각종 인프라 건설 등으로 국채 발행을 늘렸고, 연준도 9월부터 긴축통화정책을 개시해 매달 600억 달러(약 80조원)의 미국채를 시장에 팔고 있기에 국채시장의 수급 불균형은 금리를 상승 쪽으로 기울게 했다. 더군다나 연준이 정책금리를 빠른 속도로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금리 상승은 당연한 것으로 보였지만, 10년물 미국채 금리가 심리적 저지선인 4%를 가파르게 뚫고 올라가자 미 금융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그 해결책의 일환으로 국채의 조기 상환이 나왔던 것이었다.

국채 금리가 급등한 원인도 찾아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의 미국채 매도였다. 특히 일본 중앙은행은 9월 들어 엔화가 달러당 145엔에 근접하자 본격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보도에 따르면 9월과 10월 두 달간 대략 750억 달러(약 100조원)어치를 개입했다고 하는데, 시장 개입 자금은 당연히 일본은행이 보유 중인 미국채를 매각한 것이었다. 안 그래도 취약한 국채시장에 외국 중앙은행의 매도까지 얹히니 수급이 무너지며 금리가 급등한 것이었다.

문제는 미국채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금융상품으로 각종 파생상품의 기준으로 활용된다는 점이었다. 만일 이 국채 금리가 임계치를 벗어날 정도로 급변동한다면, 금융의 긴밀한 연계망을 감안할 때 예상치 못한 곳에서 큰 탈이 날 수 있다. 예를 들면 영국 국채 금리 급등이 엉뚱하게 영국 연기금 손실로 이어져 중앙은행이 개입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처럼 말이다. 결국 연준은 이제까지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인플레와의 전쟁을 잠시 늦추고 금융 불안을 잠재우기로 정책 우선순위를 바꾸었다. 국채시장 불안이 자칫 금융 위기로까지 번지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고자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비유컨대 운전 중에 비가 내리자 액셀의 강약을 살짝씩 조절하는 모습이랄까.

#앞으로 각국 금리 정책은 미국을 그대로 따라 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연준이 정책 스탠스를 조절하는 것은 물가 안정을 확신하거나 경기 침체를 우려해 내린 결정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를 잘못 해석하고 마치 금리 인상이 끝난 것처럼 처신하다가는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더구나 낮은 폭의 금리 인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고금리 기간은 더 길어질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연준이 당초 생각했던 수준보다 더 높게 금리가 오를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나아가 연준의 금리정책 변화는 분명히 여타 중앙은행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호주 중앙은행은 9월에 이어 11월에도 0.25% 포인트의 베이비 스텝으로 금리를 인상했고, 캐나다와 노르웨이 중앙은행도 기준금리 인상폭을 종전보다 낮춘 점이 이를 증명한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이전처럼 울며 겨자 먹기로 연준과 보폭을 맞추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기본적으로 미국이 금리 인상 속도를 줄일 것으로 예상되기도 하지만, 미국 국채시장의 취약성이 드러났기에 자금의 해외 이탈 개연성도 줄어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가계대출의 4분의 3이 변동금리 조건이어서 금리를 무작정 올리기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는 숨통을 트일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또 금융기관들의 경쟁적인 여수신금리 인상도 연말 자금 성수기를 지나면 잦아들 것으로 기대된다.

자기 패만 보고 치는 노름꾼처럼 돈도 잃고 호구로 놀림도 받지 않으려면, 상대방을 존중하며 상황을 예민하게 관찰하는 기본부터 갖춰야 할 것이다.

LUX경제그룹대표·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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