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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고 악기 연주… “발달장애인 아닌 우린 예술가요 사회인”

브릿지온 앙상블 단원들이 지난 6월 경기도 성남에 있는 안랩 사옥에서 진행된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현장에서 연주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제공


브릿지온 아르떼 소속 작가들이 서울 강동구에 있는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 밀알복지재단제공


지난 6월 경기도 성남에 있는 정보 보안 기업인 ‘안랩(AhnLab)’의 사옥 로비에선 클래식부터 대중가요까지 다양한 연주가 울려 퍼졌다. 이날 이곳에선 밀알복지재단(이사장 홍정길)이 창단한 발달장애인 예술단 ‘브릿지온 앙상블’과 ‘브릿지온 아르떼’의 미술 작품 전시회가 열렸다.

브릿지온(Bridge On)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지원하는 ‘문화체험형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활성화를 위한 사업으로, 밀알복지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브릿지온이란 명칭은 문화예술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연결하는 다리의 역할을 감당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장애인·비장애인의 ‘가교’가 되다

실제로 브릿지온의 인식개선 강사로 참여하고 있는 이들은 모두 발달장애인이다. 이들은 기업에 직접 찾아가 연주를 하기도 하고 직접 자신의 그림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발표도 한다. 브릿지온만의 차별점이기도 하다. 현행법상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은 5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연 1회 1시간 이상 관련 법령, 차별 금지 등 교육이 의무다.

밀알복지재단 장애인식개선센터 정규태 센터장은 12일 “(발달장애인들이) 직접 현장에 가서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직장인들이 감동해 눈물을 흘리거나 장애인 인식 개선에 관심을 가지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브릿지온은 올해만 70여건의 교육 일정을 소화했다. 브릿지온 사업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미술(작품) 활동을 하는 브릿지온 아르떼(Arte)와 악기 연주가 중점인 브릿지온 앙상블(Ensemble)이 있다. 총 12명의 발달장애인이 고용돼있다. 아르떼와 앙상블은 이들에게 번듯한 직장이자, 꿈을 펼칠 기회의 장이다.

발달장애인 아닌 어엿한 사회인
최석원(22) 작가는 직업 예술가가 되는 게 꿈이다. 그는 4명의 아르떼 작가 중 한 명으로, 2019년 5월 아르떼에 고용돼 현재까지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최 작가는 이달 초 화장품 회사인 ‘블리블리’와 협업해 그가 그린 그림이 화장품 용기와 포장에 입혀지기도 했다. 이밖에 여러 기업의 ‘러브콜’을 받아 다양한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 작가의 어머니 임은화(52) 씨는 “인간관계를 가장 어려워하는 아들이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이 (화실로) 출근해 그림 그릴 때”라고 말했다.

아르떼 소속 작가들은 평일 오전 서울 강동구의 한 화실로 출근한다. 발달장애인이 아니라 한 명의 작가로서, 사회인으로서 역할에 충실한 시간이다. 이들은 매일 4시간씩 그림을 그리고 전문 강사로부터 교육을 받는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은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한 전시회에 전시된다.

임씨는 “(최 작가가) 발달장애인이 아닌, 엄연히 작가로서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면서 “스스로 뿌듯해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최 작가는 지난 10월 지역사회 통합과 장애 인식개선 기여를 인정받아 중랑구청장 표창을 받았다.

김성찬(25) 작가는 3년 전 동화책 ‘남극으로 가는 지하철’의 그림 작가로 데뷔해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이를 인상 깊게 본 교회 권사의 소개로 2021년 아르떼에 지원했다. 김 작가의 어머니 김소희(49) 씨는 “모든 것이 운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김 작가의 집에서 직장까지는 자동차로 1시간 넘게 걸린다. 어머니 김씨는 매일 출근길을 동행한다. “거리가 멀어 처음에 고민했었는데, (김 작가가) 그림 그릴 때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힘이 났어요.”

덩달아 김 작가의 자존감도 올라갔다고 한다. 김 씨는 “(김 작가) 본인이 너무 즐거워하고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뿌듯해 한다”고 강조했다.

“발달장애인 ‘기회의 장’ 늘었으면”

브릿지온에 고용된 발달장애인 가운데 3명은 정규직, 9명은 계약직이다. 정규태 센터장은 “(발달장애인이) 예술인으로서 직장에 고용된 경우는 아마 처음일 것”이라고 했다.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이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인식개선 교육을 통해) 발달장애인도 특출난 분야가 있고 직장을 다닐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자 하는 겁니다. 문화예술 외에도 할 수 있는 일이 많거든요.”

밀알복지재단은 24개월 근속 근무한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심사를 걸쳐 정규직 전환이 이뤄진다. 각자의 실력은 중요한 심사 기준이다. 정 센터장은 “‘장애인은 무조건 채용돼야 한다’가 아니라 공정한 기준을 토대로 자기 점검과 실력 향상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석원 아르떼 작가는 오는 24일 정규직 채용 심사를 앞두고 있다. 그의 어머니 임씨는 “발달장애에 대한 인식개선과 이해도가 높아지고, 브릿지온과 같이 (발달장애인들이) 자신이 가진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며 “(장애인도) 직업을 갖고 한 명의 사회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경진 기자 yk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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