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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한 작가 내세워 ‘눈도장’… 존재감 알린 메이저 해외갤러리들

미국 작가 로버트 라우센버그(1925∼2008)는 침대 매트리스를 세운 뒤 거기에 천을 붙이고 색을 칠하곤 작품이라고 내놓아 미술사에 획을 그었다. ‘콤바인’(1953~1964)이라고 명명된 이 연작은 회화도, 조각도 아닌, 또 레디메이드도 핸드메이드도 아닌 새로운 미술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의 거장 라우센버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의 지속적인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용산구 한남동에 문을 연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에서다. 오스트리아 출신 로팍(62)이 찰스부르크에 1983년에 문을 열었고, 현재 런던 파리 등지에 지점이 있다. 페이스, 리만머핀 등 2017년에 일찌감치 진출한 미국계 다른 갤러리에 비해서는 후발주자이지만 첫 전시 ‘거꾸로 그림’으로 미술사적뿐 아니라 미술시장에서도 상한가를 치고 있는 동독 출신 게오르크 바젤리츠(84)를 내세워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후 알렉스 카츠, 안젤름 키퍼 등 줄줄이 동시대 미술의 거장을 소개해왔다.

미술사학도까지 설레게 하는 라우센버그가 선보이는 이번 개인전은 ‘코퍼헤드 1985/1989’이다. 라우센버그가 60세에 시도한 이 연작은 구리판을 캔버스처럼 사용한다. 실크스크린 기법을 활용해 이미지를 찍어내고 아크릴 물감을 칠하고 약품을 사용해 변색시키는 회화적 손길을 가함으로써 회화와 판화의 경계를 넘는다.

작가는 1984년 해외문화교류 프로젝트를 통해 칠레에서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현지 작가를 통해 이 기법을 배우게 됐다. 칠레 경제에서 중요한 원자재인 구리를 사용한 것은 독재자 피노체트에 저항하는 칠레 국민들에 대한 연대의 표시이기도 했다.

전시장에 진열된 구리판에 새겨진 이미지는 칠레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피노체트 집권 하의 거리 풍경과 반체제 인사들의 피난처인 성당 이미지가 있고, 십자가·예수 등 종교적 도상들을 그려넣기도 하고 손바닥 자국을 남기기도 했다. 구리판에 이미지로 사용된 사진도 전시돼 ‘사진작가 라우센버그’를 느낄 수 있다. 작가는 1985년에 코퍼헤드로 불리는 이 연작을 처음 전시했다. 당시 선보인 12점 중 8점이 처음으로 한꺼번에 나왔다. 갤러리 측은 “라우센버그라고 알려진 작가의 잘 몰랐던 작품을 보여주는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12월 23일까지.

올해 4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문을 연 미국계 글래드스톤갤러리는 상대적으로 동시대 중견 작가들을 활발히 소개한다. 타데우스로팍과 함께 글로벌 10대 메이저 갤러리에 속하는데, 미술사학자 출신 바바라 글래드스톤(86)이 1980년 뉴욕 맨해튼에 갤러리를 차리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현재 뉴욕 브뤼셀 로스앤젤레스 로마 등에 지점이 있다. 지난해 알렉스 카츠가 전속으로 있는 개빈 브라운 갤러리가 합류하며 덩치가 더 커졌다. 프랑스 필립 파레노(58), 한국계 아니카 이(51) 등 50대 설치 미술 작가를 주로 소개해왔다. 현재도 영화 조각 사진 드로잉 등을 넘나드는 미국 작가 매튜 바니(55) 개인전 ‘구속의 드로잉 25’를 한다.

매튜 바니 개인전이 국내에서 열린 것은 2005년 리움미술관 개관 1주년 기획전으로 소개된 지 17년만이다. 바니는 미술사 교수인 글래드스톤이 교수직을 접고 갤러리를 차리게 될 계기를 제공한 작가였다는 점에서 뜻 깊다. 글래드스톤은 지인이 갤러리를 접는 바람에 예정된 전시를 하지 못하게 된 작가 바니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그는 예일대에서 의학과 미술을 전공했고, 미식축구에 빠졌던 바니가 붓과 물감 대신 의학용품과 유명 야구선수의 유품 등을 활용해 작업하는 걸 보고 신선한 충격에 뺘졌다. ‘죽은 미술’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시대 미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교수직을 미련없이 버리고 갤러리를 차렸던 것이다.

바니는 장편영화 연작인 ‘크리매스터’로 미술계에 존재감을 드러낸 작가다. 외부 자극에 반응해 고환의 수축을 조절하는 크리매스터 근육에서 딴 제목처럼 성(性)에 대한 암시로 가득한 이 작품을 두고 가디언은 “아방가르드 영화사에서 가장 상상력 넘치고 번득이는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구속의 드로잉’은 작가가 87년부터 해오는 연작인데, 말 그대로 신체에 제약을 가한 뒤 드로잉을 한다. 근육이 저항에 부딪치며 오히려 더 강한 힘을 내는 결과를 영상으로 찍고, 드로잉으로 제시한다. 이 연작의 25번째인 이번 개인전에서는 작가가 딸과 함께 등장하는 다큐 영상을 먼저 봐야 한다. 주조소에서 나무판에 딸의 초상화를 새기는 아버지 바니는 딸의 몸놀림을 조심스레 지켜보며 작업한다. 딸은 그런 아버지의 시선을 느끼며 불에 태워 숯이 된 나뭇가지로 벽에 붙인 종이에 그림을 그린다. 심지어 딸은 운동화에 나뭇가지를 매달아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더 큰 구속은 아버지의 시선과 보살핌이라고 말하려는 듯 아버지의 시선을 벗어난 딸의 동작이 한껏 자유로워지며 흑백 화면이 갑자기 칼라 화면으로 바뀌는 것으로 영상은 끝이 난다. 그 과정에서 딸이 그린 그림, 아버지 바니가 작업한 딸의 초상화 등이 전시에 함께 나왔다. 12월 9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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