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이상 (10) 납품한 업체 부도로 인생 최대 위기… 3년 반 만에 재기

유이상 풍년그린텍 대표가 경기도 안산 계란판 공장에서 폐지가 어떤 공정을 통해 계란판으로 제작되는지 설명하고 있다. 안산=신석현 포토그래퍼


어음을 받고 납품을 한 지 5개월 만에 상장업체였던 기업은 허망하게 부도가 났다. 받아 뒀던 어음은 휴짓조각이 됐다. 무려 4200만원어치였다. 1981년.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한 채가 3000만원에 거래되던 때였다. 이른바 대기업 부도와 함께 하청업체들이 연이어 도산하는 연쇄도산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내가 가진 전 재산을 털어도 감당할 수 없는 큰돈이었다. 인생 최대 위기였다. 아마 그런 부도를 맞게 된다면 재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개의 경우는 그런 상황에서 그 바닥을 떠나 종적을 감추고 새로운 곳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위장해 살아가거나 감옥에 가게 된다.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면 3차 피해자가 또 생길 것이 뻔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이 위기에서 도망치지 않고 수습할 길을 찾아야 했다.

우리 회사가 받은 어음은 박스를 만드는 원자재인 골판지 공장에 물품대로 지불했기 때문에 현실적 피해는 골판지 회사로 돌아갔다. 굳게 결심을 하고 골판지 공급업체 사장을 찾아갔다.

“사장님. 어떻게든 일을 할 수만 있다면 돈을 벌어서 갚겠습니다. 우리 회사의 박스 제작 설비가 좋은 기계는 아닙니다만 공장 설비를 양도받으시고 대신 원자재를 계속 공급해 주십시오. 완전히 상환하게 되는 날 설비를 다시 양도받겠습니다.”

내가 부도를 내고 잠적해 버리는 경제사범이 되지 않고 어떻게든 사안을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명의만 내 이름이었을 뿐 모든 권한을 골판지 회사에 넘겼다. 사장님은 부도 금액의 5분의 1도 안 되는 우리 공장 설비를 담보로 원자재를 공급해 주고 내게 상환 시기를 유예해줬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보호해주신 덕분에 매달 발생하는 수익으로 골판지 회사에 조금씩 상환할 수 있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입이 바싹바싹 마르는 날이 허다했다. 끼니를 거르고 차비를 걱정하며 구두 뒤축이 닳도록 뛰어다닌 나날들이다. 그렇게 3년 반을 끊임없이 경주한 끝에 4200만원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결국 ‘풍년기업사’가 살아남은 것이다. 3년 반 만에 마지막 부채를 모두 상환하던 날 골판지 회사 사장님과 한 중국집에서 마주 앉았다. 사장님은 짜장면 먹던 젓가락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유 사장만 같으면 그래도 사업할 만하겠어.”

사업 시작한 지 3년 만에 겪은 부도, 부도 상황을 정리하는 데 걸린 3년 반의 시간, 그리고 오늘까지 나는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밑바닥에 떨어졌다가 재기하는 3년 반 동안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고 원망하거나 한탄한 적은 없었다. 시련을 겪지 않은 사람은 기쁨을 알지 못한다. 어려움을 헤치고 일어난 사람만이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 밑바닥이라고 느껴질 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이 시련이 나를 더 단단하게 해줄 것이라고, 또 내가 속한 공동체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기초라고 생각했다.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고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자세. 하나님께선 내게 다른 달란트를 주신 게 아니라 그와 같은 긍정적인 태도를 주신 게 아닐까 싶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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