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 아이, 아나운서처럼 책 읽게 된 비법은…

에벤에셀교회 성도들이 27일 경기도 고양 교회 본당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모였다.


손범서 목사가 설교하는 모습. 에벤에셀교회 제공


지난 5월 어린이날 행사. 에벤에셀교회 제공


지난 6일 타코야키 만들기 체험. 에벤에셀교회 제공


지난 26일 독서 수업 포스터. 에벤에셀교회 제공


“어려운 가운데서 다문화 가정을 잘 섬기는 이웃 교회가 있어요.” 경기도 고양에서 목회하는 한 목사의 소개로 27일 주일 에벤에셀교회(손범서 목사)를 찾았다. 상가 1층에 있는 예배당은 환하고 아담했다. 손범서(54) 목사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잠 27:1~2)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우리는 언제 어떻게 갈지 모르는 인생”이라며 “오직 하나님만을 자랑하자”고 했다.

손 목사는 예화를 들 때 영어를 간혹 사용했다. 성도들은 “아멘”으로 화답하기도 하고 재치있는 표현에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예배 후 필리핀에서 온 여성 성도 3명과 마주했다. 레아 마칼란다(46)씨는 “필리핀에서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성당을 찾았는데 아이들이 가톨릭 미사에서 하는 말을 너무 어려워 해 다니기 힘들었다”고 했다.

마칼란다씨는 우연히 한 수업에서 손 목사의 아내인 하세가와 아키코(54) 사모를 만났다. 그는 “딸과 아들이 있는데 교회에서 한국어뿐 아니라 성경과 수학 등을 배운다”면서 “아이들이 영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는 것 같다”고 감사했다. 8년째 에벤에셀교회를 다니는 그는 필리핀공동체에서 만난 다른 자매 리카 미스랑(33)씨도 데려왔다.

미스랑씨는 “(나는) 목사님 말씀이 귀에 쏙쏙 잘 들어와서 좋다. 우리를 위해 영어도 가끔 사용하시고 성경을 쉽게 풀어주신다. 무엇보다 손 목사님 부부가 우리처럼 다문화가정이라 우리 상황을 잘 이해하고 보살펴주신다”고 했다. 손 목사 부부도 이들처럼 다문화가정이다. 손 목사는 1992년 캐나나 유학 시절 일본인 아내를 만나 96년 결혼, 딸 인애(23)씨와 아들 명철(19)군을 두고 있다.

미스랑씨는 초등학생 자녀 2명을 키운다. 지난 5월부터 자녀 2명과 함께 출석 중인 아이토넷(34)씨는 “어떤 교회에 가면 사람도 많고 음악 소리가 커서 기도하기도 힘든 경우가 있는데 우리 교회는 차분해서 늘 마음이 편안하다. 요즘엔 내가 필리핀 친구들한테 우리 교회를 소개한다”며 웃었다. 다문화가정 엄마들이 공통적으로 고마워하는 것은 자녀교육이었다.

교회는 코로나 기간에 교회학교 아이들에게 전화로 성경을 읽어줬다. 교회에서 오프라인 예배를 드리기 어려웠을 때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지방회에서 교회학교 대상 성경 암송 대회가 있었다. 아동부 예배를 담당했던 김경자(60) 권사는 “하세가와 사모님 권유로 대회 후에도 아이들과 매일 조금씩 잠언을 읽었다”고 했다.

김 권사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스랑씨의 딸 서우(9)양과 마칼란다씨의 아들 예준(9)군에게 매일 전화를 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평일 저녁 8시. 두 아이에게 차례대로 전화를 걸어 10~20분씩 성경을 읽어주고 기도했다. 김 권사는 “아이들이 매일 그 시간을 기다리면서 성경책을 준비해 너무 고마웠다”고 했다. 덕분에 한국말이 조금 서툴던 두 아이는 이제 누구보다 책을 잘 읽는 아이들이 됐다.

이제 오프라인 예배를 드리는 예준군은 “학교 선생님이 나한테 ‘아나운서처럼 책을 잘 읽는다’고 칭찬하신다”고 자랑했다. 성경 구절을 읽던 습관에 따라 또박또박 한글을 읽다 보니 생긴 변화다. 손 목사는 “우리 부부가 다문화 간 만남이다 보니 목회를 시작할 때 이런 가정을 돕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했다.

하세가와 사모는 “처음엔 일본인 가정을 도우려 했는데 지내다 보니 필리핀 가정이 더 많이 모였다”며 미소를 지었다. 코로나 전 교회는 어른이 50명 정도 출석해 자립했지만 팬데믹을 지나며 출석 성도가 30명 밑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손 목사 부부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 때문에 교회를 유지할 수 있었다. ‘도움의 돌’이라는 히브리어 뜻처럼 에벤에셀교회는 필리핀 다문화가정에 도움이 되는 따스한 둥지다.

고양=글·사진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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