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식 기자의 신앙적 생각] 문턱 낮추고 세상과 소통해야 길 있다

과거 한국 교계는 세상과 지나치게 구분되려는 보수적 움직임으로 세상과 괴리감이 있었다. 다음세대 등을 생각해 교계가 문턱을 낮추고 세상과 적극 소통하려는 모습이 요구된다. 사진은 한 교회의 첨탑 모습. 국민일보DB




이달 초 한국기독언론대상위원회(이사장 손봉호 교수)가 제정한 ‘기독언론대상’에 수상자로 참석했다. 이전에는 이 시상식의 존재 여부를 몰랐다. 교계가 한 해 동안 보도됐던 좋은 기사를 선정해 시상하는 게 다소 신기했다.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상의 취지를 설명하는 것에 주목했다. 그는 “교계가 문턱을 낮추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이런 상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세상과 소통하는 데 언론만큼 효과적인 게 없고, 그 일환으로 기자상이 제정된 것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함께 최근 부산의 크리스마스 문화축제 사례가 눈에 띄었다. 부산에 있는 교회들이 힘을 모아 부산 광복동 삼거리에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웠다. 트리 주변으로 무대를 설치하고 다양한 공연을 하고 무료 거리찻집 등 운영하고 있다. 더욱이 상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축제 기간 동안 30~50% 할인 행사도 진행된다. 이 같은 축제가 열리는 이유는 기독언론대상처럼 세상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기 위함이다. 크리스마스가 비단 기독교인들뿐 아니라 비기독교인들에게도 친숙하므로, 함께 축하하며 가까워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모습은 일반적인 교계의 모습이 아니다. 그동안의 교계 이미지에 비춰봤을 때 매우 생소한 모습들이다. 왜 그럴까.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교계에서 세상과 지나치게 구분되려는 보수적인 움직임이 자주 엿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담장을 쌓고 ‘그들만의 리그’를 진행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심지어 어떤 교회와 목회자는 세상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언행으로 일관해 빈축을 사기도 한다. 필자가 이렇게 느낄 정도면 세상 사람들이 느끼는 정도는 더욱 심할 것이다.

그렇다 보니 한국 교계와 세상과의 괴리감은 매우 크게 나타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게토화된 교계를 외면하고, 교계 안에 있던 사람들마저 떠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현재 호감도나 신뢰도 측면에서 한국 교계가 다른 종교 대비 매우 낮은 수준을 기록하는 것도 이 같은 모습과 절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국 교계의 위기감이 갈수록 높아지는 가운데 향후 교계가 문턱을 낮추고 세상에 먼저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모습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근엄하고 보수적인 꼰대 어르신보다 비교적 밝고 개방적인 사람에게 밀착하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특히 다음세대를 생각해서라도 교계는 이 같은 모습을 확실히 장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청소년들이 주축인 다음세대는 향후 교계를 이끌어 갈 중추로서 반드시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현재 다음세대 복음화는 그 어느 때보다 요원하다. 교계와 다음세대 간의 소통이 극히 미비하기 때문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다음세대에게 고리타분한 방식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먼저 문턱을 낮춘 후 그들의 기호를 파악하고 맞춤형으로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과거의 한 역사는 교계에 반면교사가 되기도 한다. 1600년대부터 조선 사회는 교조적인 유학의 기풍이 나타났다. 우암 송시열을 필두로 한 사대부들은 성리학을 절대화했다. 그들은 다른 사상을 모두 이단으로 배격하고 ‘그들만의 리그’에 갇혔다. 일례로 자신만의 이론을 펼친 윤휴 등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규정해 극심한 탄압을 일삼았다. 갈수록 교조화, 보수화된 조선 사회는 다른 개방화된 국가가 눈에 띄게 발전할 때 오히려 퇴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말은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좋지 않았다. 이 같은 역사적 사례는 분명 한국 교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선 시대 사대부적인 마인드에서 벗어나 세상과 널리 소통하며 발전해나가는 교계를 소망해본다.

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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