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성권 (5) 요나3일영성원서 단식기도… 지난날 곱씹으며 재기 꿈꿔

최성권 선교사가 심적으로 힘들었던 30대 시절 어머니 집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아내의 마음을 다스린 어머니는 이제 내게로 시위를 당겼다. 틈만 나면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신앙의 조언을 하시면서 나에게 서울에 있는 요나3일영성원에 가서 기도해 볼 것을 권유했다. 다른 때 같으면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하면서 무시했겠지만 그럴 처지가 못 됐다. 나는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는 위기를 깨닫고 순종하겠노라 말씀드렸다.

사실 어머니는 요나3일영성원의 이에스더 목사님을 미리 만나 부모의 속을 썩인 자식이 부디 사업에서 손을 떼고 이제라도 주의 종의 길을 가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하셨단다. 오직 그 길만 열어달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이 목사님은 어머니의 이야기는 충분히 들었으니 이제 아들의 얘기를 들어봐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어머니는 하루라도 빨리 아들을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나에게 그곳에 가서 목사님을 꼭 만나보라고 권한 것이었다. 아무런 대책이 없던 나로선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이야 못 들어주랴’는 심산으로 어머니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요나3일영성원을 찾은 것은 2005년 10월 어느 날이었다. 그때는 1층 예배실 뒤편에 복층으로 만들어진 단식관이 있었다. 몸집이 큰 내게는 좀 작아 보였지만 들어가서 누워보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3일의 단식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진정한 안식이 됐고, 7일 동안 죽을 먹으며 보호식을 할 때는 끼니마다 아하수에로 왕이 배설한 진수성찬과 같았다.

사면이 꽉 막힌 단식관에 가만히 누워서 지난날들을 하나씩 복기했다. 부채가 늘어나면서 잘 다니던 회사도 못 다니고 쫓겨나듯 그만두게 된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어린 아들을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더부살이하도록 결정을 내렸던 내가 한없이 미웠다. 그때 나와 아내의 이름으로 진 부채가 자그마치 1억5000만원을 넘었으니 순손실만 3억원에 이른다. 부동산 거래소에서 일하던 몇 달 만에 신기하게도 매매가 잘 이뤄져 1500만 원의 수익금을 손에 쥐고서 기뻐하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 돈으로 서울 송파구에 반지하 방을 구하게 되면서 짧은 기간이나마 시골에 내려갔던 아내와 아들을 서울로 올라오게 해 같이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추억으로 슬픈 마음을 달랬다.

막노동이나 배달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되자 몸은 자동으로 그 일에 익숙해졌다. 새벽일을 잘하니까 낮에도 일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하지만 가락시장에서 새벽일을 하면서도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가 거부 의사를 분명히 표하자 사장은 나의 새벽 일마저 그만두라고 했다. 그 바람에 시장에서 쫓겨나게 됐던 일. 그리고 하루가 멀다 않고 괴롭히던 빚 독촉. 대리운전과 인터넷 전화 영업을 하면서 분주하게 하루를 보내고 해가 질 때면 마음이 울적했던 일. 갈 곳이 없어 서울의 여기저기에 눈에 띄는 찜질방을 하룻밤 안식처로 삼았던 생활.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정리=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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