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국내 장애인부터 섬긴다”… 100억 기금 조성 박차

아프리카 말라위 은코마 지역 주민들이 2013년 2월 장애인 지원 센터인 ‘밀알복지재단 치소모 밀알센터’ 개소식에서 감사의 뜻을 전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주민들 뒤에 세워진 건물이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의 기부금으로 지어진 ‘손봉호홀’이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손봉호(84·사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 4월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13억원 상당의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이 돈이 밀알복지재단에서 운용할 장애인권익기금의 종잣돈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국민일보 4월 15일자 1 29면 참조). 당시 밀알복지재단에서는 손 교수의 뜻을 기려 ‘한밀’이라는 그의 호(號)를 기금 타이틀에 내거는 방안을 제안했으나, 손 교수가 거절했다고 한다. 대신 그는 ‘권익’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길 강력히 희망했다. 기금이 장애인을 시혜나 연민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그들의 권익 신장에 초점을 맞춰 운용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렇다면 장애인권익기금은 어떻게 조성되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운용될까. 그리고 이 돈은 어디에 쓰이는 것일까.

밀알복지재단, 100억원 기금 모은다

28일 밀알복지재단에 따르면 1993년 설립된 이 재단은 내년 설립 30주년을 맞아 장애인권익기금 100억원 조성 캠페인에 나설 방침이다. 해당 기금의 규모는 현재 손 교수가 13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탁한 것 외에 소액 기부가 일부 추가됐으나 많이 커지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금 운용 모델은 이른바 ‘기부자 조언 기금’(Donor Advised Fund) 형태를 띠고 있다. 재단에서는 손 교수가 기부의 뜻을 밝힌 이후 별도 법인이나 재단을 만들어 기금을 운용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이럴 경우 기금의 상당액이 법인 혹은 재단 운영에 투입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부자 조언 기금 모델을 활용하면 별도 법인이나 재단을 설립하지 않으면서 기부자가 사업 운영에 지속해서 조언(Advised)할 수도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 모델은 선진국에선 이미 보편화된 기금 운용 형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밀알복지재단에서는 기금 운용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장애인권익기금 운영위원회’를 구성한 상태다. 앞으로 운영위는 기금을 활용한 각종 프로젝트의 방향을 제시하면서 사업 모니터링 업무를 맡게 된다. 재단과 연계된 전문가들은 기부에 필요한 법률 세무 공증 신탁 등의 업무를 해결해준다.

밀알복지재단은 100억원 규모의 기금이 조성되면 원금을 바탕으로 각종 수익 사업을 벌이고, 이를 통해 얻는 수입을 통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관심을 끄는 것은 기금을 통해 어떤 프로젝트를 전개할 것이냐는 점이다. 재단 관계자는 “기금은 주로 아프리카 장애인들을 위한 프로젝트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며 “국내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사역에도 힘을 보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성경적 사랑 실천은 장애인 먼저”

아프리카 장애인 권익 개선을 목표로 삼는 이유는 적은 재정으로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어서다. 손 교수는 지난 4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아프리카 말라위 장애인을 위해 2000만원을 기부했던 일화를 들려주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한국에서 2000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다르다. 2000만원을 기부한 뒤 말라위에서 이 돈으로 직업교육 및 각종 재활시설 건립을 비롯해 30개 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것을 봤다. 어렵고 가난한 이들에게 가는 돈은 그 가치가 몇 배 커진다는 것을 실감했다.”

당초 밀알복지재단에서 장애인권익기금이라는 이름에 덧붙이려고 했던 ‘한밀’이라는 손 교수의 호는 성경에서 가져온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밀알복지재단은 ‘한 알의 밀’과도 같았던 손 교수의 재산 기부가 100억원 규모의 장애인권익기금 조성을 통해 ‘많은 열매’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손 교수는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가장 극심한 고통 속에 있는 이들부터 먼저 돌보라는 것이 성경 속 가르침의 핵심이고,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아프리카 장애인이야말로 교회가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들”이라며 “한국교회가 이들을 섬기는 장애인권익기금 조성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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