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성권 (12) ‘천지창조’의 감동 품고 사도 바울의 길 ‘트레 폰타네’ 찾아

최성권 선교사가 2018년 6월 성지 순례차 방문한 바티칸시티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관광 가이드와 약속된 테르미니 지하철역 주변으로 한국인 관광객들이 하나 둘 몰려 들었다. 삽시간에 서너 팀이 형성되는 걸 보면서 우리나라의 해외 관광 열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그토록 싫어하는 관광의 백미 깃발 따라가기에 나섰다.

모두 이어폰을 끼고서 가이드의 안내를 들으며 박물관 방향으로 행진을 계속한다. 언덕을 따라 한참이나 올라갔는데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고 있다. 한 줄은 올라가고 또 한 줄은 내려간다. 이들이 모두 바티칸 박물관을 보기 위해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다. 이 즈음에서 우리는 가이드에게 우리의 관람 목적을 밝혔다. 그리고 오늘 관람 일정에서 필요한 것은 시스티나 예배당의 미켈란젤로 작품뿐이니 박물관 입장과 동시에 우리는 자유롭게 행동하겠다는 것이었다.

단체로 이동하다가 자유의 몸이 된 것이 얼마나 행복했던지. 안내자를 동반한 그룹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깃발만 쫓아가기에 바빴다. 그러나 우리는 천장화로 유명한 천지창조의 대작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쳐다보며 감상했다. 이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미켈란젤로는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가. 환갑이 된 미켈란젤로는 당시 교황 클레멘스 7세로부터 제단 위 벽에 ‘최후의 심판’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러나 1년 만에 교황이 사망하게 되자 이 작업은 일시 중단됐다가 알렉산드로가 교황 바오로 3세로 취임한 후 다시 이 그림을 의뢰함으로써 재개돼 서쪽 벽에 ‘최후의 심판’이 완성됐다.

14m에 달하는 거대한 높이의 벽면에 온갖 인간의 형상을 망라한 391명의 육체의 군상이 그림 속에 드러나는 이 대작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교황의 의전담당관으로서 가장 부패한 인물이었던 ‘비아지오 다 체세나’ 추기경의 끈질긴 방해에도 불구하고 미켈란젤로는 부르심을 받은 자 답게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를 ‘지옥의 수문장 미누스’로 그려 넣을 정도로 타협하지 않는 신앙의 강직함을 표현했다.

다음 날에는 바울 사도가 순교한 장소로 추정되는 트레 폰타네를 찾았다. 사도행전과 옥중서신을 통해 늘 만나왔던 그분을 찾은 느낌이었다. ‘바울 사도의 길’과 ‘그분의 마지막 여정’이 오롯이 서려있는 숙연함 때문인지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트레 폰타네(Tre Fontane, 三泉)’. 2년간 가택연금됐던 바울 사도가 어떻게 순교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64년 네로 박해 때 순교당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네로가 빈민가를 불 지르자 시민여론이 사나워졌고, 황제는 다급한 나머지 그리스도인들을 방화범으로 몰아 박해를 시작했던 것이다. 이 때 바울과 베드로 두 사도 모두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베드로는 ‘십자가형’을 받았지만 로마시민권자였던 바울은 ‘참수형’으로 순교를 당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 전설에 따르면 이곳을 담당했던 형리가 사도 바울의 목을 자르니 머리가 세 번 튀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의 머리가 튄 자리마다 샘물이 퐁퐁 솟아났는데 이것을 형상화한 그림과 조각이 이곳에 다양한 작품으로 걸려 있다. 트레 폰타네 바울 순교 기념교회 안으로 들어가자 아담한 규모에 적막할 정도로 깊은 고요함이 흘렀다.

정리=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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