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죽음의 유혹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1위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K팝, K드라마, 교통문화, 인터넷, 깨끗한 공중시설 등입니다. 그런데 그중에 불명예스러운 것도 있는데, 그것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타이틀입니다. 이 타이틀은 오랫동안 연속해서 1위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벗기 위해서 정부 사회 국가 단체들이 여러 노력을 하고 있지만 효과는 여전히 미비합니다.

SNS를 보면 자살이라는 단어를 희화화하는 문장들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것을 봅니다. 요즘 젊은 층은 나쁜 상황이 생겼거나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자살각’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이번 생에는 틀렸어, 자살함, 인생 리셋’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급격하게 번지는 이 신조어들은 자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충격적인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습관처럼 ‘죽겠네, 죽고 싶다, 뒤져버리든가 해야지’하는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많은 곳에서 여러 사람이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우리 중에도 피할 수 없는 어려움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즐겁고 행복한 날들도 있지요. 그런 중에도 고통과 권태를 실감할 때도 있습니다. 고난이 끝나가나 싶으면 새로운 고난이 다가옵니다. 이러한 사이클 안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난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아,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은 좌절감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나쁜 감정이 점점 자라면 그 사람의 영혼은 깊이 병들게 되고 ‘자살’이라는 극단을 선택하게 됩니다.

동방의 의인으로 표현되던 욥은 고난 앞에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선지자 엘리야도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고 싶다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먹은 후 자살하게 됩니다. 이렇게 성경의 인물들도 고난 앞에서 죽음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가까이서 죽음을 권하고 있습니다. 마치 술을 한잔 두잔 하다 보면 마침내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취하게 되는 것처럼, 사단으로부터 죽음을 한번 두번 계속 권함을 받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나는 죽어야 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되도록 사단은 사람을 이용합니다. 따라서 누구와 함께 있는가, 어떤 대화를 하는가는 정말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상대가 나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가상화폐의 투자 실패를 감당하지 못하고 이성 친구와의 관계에 실패하며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낙심으로 죽고 싶은 만큼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결국 죽음을 선택하게 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얼굴을 돌려 시선을 주님께 고정하면 힘들 때 도와주시고 위로하시고 안아주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세상이 무너질 것 같겠구나, 가슴이 너덜너덜해졌구나, 미래가 보이지 않겠구나’하고 우리의 아픔을 공감하시는 예수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자유의지가 있는 사람은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단이 주는 죽음의 유혹을 선택하겠습니까. 아니면 살리시는 예수님의 도움을 선택하겠습니까. 생명의 예수님을 의지하고 새해를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홍권세 울산 성산교회 목사

◇홍권세 목사는 연세대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울산 성산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지은 인간들을 어떻게 사랑해 주셨는지 그 놀라운 사랑을 소문내고 증거하는 종이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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