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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현 목사의 복음과 삶] 어제와 내일의 경계선에서



우리는 시간 여행을 한다. 삶은 시간의 조각들로 만들어진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시간에 대한 애정이 다르다. 시간이라는 화폭에 삶을 담아낸다. 때론 작품이 되기도 하고 졸작이 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간 자리엔 흔적이 남는다. 시간은 일정한 속도를 내며 앞으로 나아간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선명한 경계선이 있다. 지나가 버린 과거, 오지 않은 미래 사이에 주어진 시간이 현재다. 어느 쪽으로 더 쏠리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달라진다. 시선은 미래를 향하지만 감정은 아직 과거의 한 시점에 머물러 있다면 오늘이라는 시간은 과거형이다. 정리되지 않은 과거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힘을 약하게 한다. 시간의 강 밑바닥에 상처가 깊으면 강은 역류한다. 바람에 출렁이는 강 표면보다 밑바닥 기류가 문제다.

의외로 과거의 경계 안에 갇혀 멈추어 선 사람이 많다. 과거에 묶여 있는 것은 대개 아픈 추억들이다. 아픈 과거와 결별하지 못하면 시간은 상처에 밟힌다. 과거를 무시할 수는 없다. 문제는 지나친 과거에 대한 응시다. 그것은 문제를 조망하는 해석의 방식과 연관이 있다. 과거는 무조건 잊으려고 할수록 선명해진다. 그래서 해석이 중요하다. 아픈 과거에 예쁜 리본을 달아주고 미래를 향한 길에 꽃가루를 뿌려줘야 한다. 그늘진 과거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재조명하면 어두운 과거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그 과거를 충분히 사랑하고 끌어안으면 과거의 기억은 고전이 되어 미래를 살아가게 하는 지혜로 변할 수 있다. 아픈 상처가 아름다운 추억으로 전환되는 순간 과거는 제 자리를 잡는다.

과거, 현재, 미래는 엿가락같이 딱 부러지지 않는다. 무리한 단절은 더 큰 고통을 안길 수 있다. 시간은 임의로 단절할 수 없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서로 축복하지 않으면 인생은 꼬인다. 시간의 배열이 뒤엉키지 않아야 한다.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의 불연속성이 문제다. 아픈 과거의 상처를 싸매지 않으면 그토록 싫어했던 과거가 다시 괴물로 태어나 괴롭힌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과거는 과거의 시간으로, 현재는 현재로 사는 것이 관건이다. 과거에 발목이 잡히지도, 성급하게 미래를 불러내지도 말아야 한다. 오늘이라는 시간의 질량을 높여야 한다. 삶의 중량감은 시간의 질량에서 만들어진다.

현재에 충실할수록 미래는 낯설지 않다. 미래는 생각보다 까다롭다. 미래로 한 걸음 내딛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미래는 베일로 자신을 가리고 있다. 낯선 얼굴이고 미로이다. 미래는 상냥하지 않고 거칠다. 용기가 필요하다. 가나안을 목전에 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강하고 담대하라’고 반복적으로 명령하신다. 미래를 향해 용기를 내지 않으면 시간의 경계선을 넘지 못한다. 후회는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오랫동안 머뭇거릴 때 찾아온다. 과거로 숨어들려는 연약함은 현실 도피가 되고, 허망한 꿈에만 사로잡히면 과대망상증이 된다. 과거의 상처, 미래의 꿈 사이에서의 현실이 내가 그릴 화폭이고 연주할 악보다.

현재의 나를 사랑하고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내게 주어진 날이 많든 적든 끌어안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이 주신 현재를 사랑하는 사람은 과거를 미워하거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이유가 없다. 건강하고 충실한 오늘을 통해 과거를 재해석하고 친숙한 미래를 기다린다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2023년도 기대할 만하지 않을까.

(수영로교회)

약력=△총신대 신학대학원, 미국 풀러신학교(DMin) △호주 시드니새순장로교회 목사 역임 △현 수영로교회 담임목사, 아시아언어문화연구소·부산성시화운동본부 이사장, 코스타 국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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