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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속 기독교인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열풍으로 온 세계가 뜨겁습니다.

오징어 게임 스토리 자체는 결코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오징어 게임은 456억원의 상금을 두고 사람들이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하는 9부작 시리즈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채무를 진 456명의 참가자들은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합니다. 참가자들은 모두 자본주의 사회에서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입니다.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 하지만, 게임 탈락자들은 집이 아닌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게임을 멈추지 않습니다. 게임 밖의 현실이 이들에게는 이미 죽음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오징어 게임’에는 기독교인도 등장합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부정적으로 묘사된 기독교인의 모습 뿐입니다. 오징어 게임의 최후 승자가 된 주인공은 눈이 가려지고 양손이 뒤로 묶인 채 비오는 거리에 버려집니다. 다른 행인들은 주인공을 무시하고 지나갑니다.

이때 전도자가 다가가 말하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괜찮아요?’가 아닌 ‘예수, 믿으세요’ 다가옵니다. 차라리 말을 하지 않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다가가 조용히 그를 붙잡아 일으켜 줬으면 좋았겠는데 말입니다. 왜 오징어 게임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사람들로 그려졌을까요. 어쩌면 오늘의 기독교인 이미지가 그대로 반영된 것은 아닐까요. 

대중매체와 미디어가 기독교와 크리스천에 대해 이렇게 비뚤어지고 왜곡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은 비단 오징어 게임에서만이 아닙니다. 실제로 2000년 이후 제작된 국내 영화와 드라마 속 기독교 묘사들은 하나같이 비상식적이었습니다. 손만 대면 쓰러지는 치유 집회,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기독교인, 교회가 권력과 유착해 권력을 이용하는 모습 등 비극적 현실에서 위로가 되지 못하는 기독교인의 모습도 종종 그려집니다.

근래에 비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종교에 대한 대국민 인식조사가 있었습니다. 조사 결과 기독교인들의 이미지는 ‘거리를 두고 싶은’ ‘사기꾼 같은’ ‘이중적인’ ‘이기적인’ 등의 형용사가 많았습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이 왜 이 지경이 됐을까요. 

‘언론의 프레임’이나 일부 교회나 신자들의 일탈등 이유가 있지만 960만 기독교인 한 명 한 명이 작심하고 빛과 소금으로 살지 않는 한 왜곡된 이미지를 걷어내기는 힘듭니다. 

성경은 이 세상과의 싸움이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 싸움이라 합니다(엡 6:12),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실 때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에 따르면 기독교인은 애초에 찌꺼기 같은 존재였습니다. “우리는 욕을 먹으면 도리어 축복하여 주고, 박해를 받으면 참고, 비방을 받으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삶 속에서 실력을 길러야 합니다. 힘이 아니라 실력입니다. 인내하며 수모를 받아들일 실력입니다. 

감사하게도 사람들은 교회가 본연의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공교회로서 그 역할을 해달라는 요구는 어느 때보다 큽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어 합니다. 기독교인도 힘듭니다. 그러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 내 신앙, 우리교회 중심에서 벗어나 이웃과 지역사회, 이 나라와 세계를 향해 눈을 돌려야 할 때입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신 이유입니다.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456명은 어쩌면 우리 이웃이며 가족, 친구, 그리고 나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저들이 극한의 게임에 빠져 목숨을 잃지 않도록 돌봐야 하겠습니다. 

울더라도 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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