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식구도 되고 욕도 되는 ‘가히’ 개



“배추씨 심은 밭에 가이 못 들어가게 해라.” 어느 날, 읍내 장에 가시던 어머니의 신신당부가 있었으나 노는 데 정신이 팔려 그만 깜빡했던 것입니다. 이미 가이가 밭에서 뛰어다니고 있었고 밭은 그야말로 개판이 되고 만 거였지요. 눈물이 빠지도록 나는 혼나도 쌌던 것인데, 내용을 알 턱 없는 그 가이 꽁무니를 두어 번 걷어차 봤으나 분은 안 풀렸던 것입니다.

개를 ‘가이’라고 하는 어른들이 있지요. 개는 원래 ‘가히’였는데 한글이 반포되고 40년 후쯤 발간된 ‘두시언해’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가히와 말은 진실로 사련(思戀)하나니 ….’ (충직한) 개와 (생활에 요긴한) 말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의미이겠습니다.

무술(戊戌)년 개해입니다. 戌은 십이지(十二支)의 열한째이지요. 犬(견)이 개를 대표하는 한자인데, 狐(여우 호) 등에서 보듯 일반 짐승을 이르는 부수로 모양이 변해 쓰입니다. 獄(감옥 옥). 양쪽에 개가 있지요. 으르렁대는 개들처럼 사람이 싸우면 심판해서 가두는 곳, 죄인을 가둬놓고 개를 풀어 도망 못 하게 한 곳으로 풀어볼 수도 있겠습니다.

가장 먼저 가축화됐다는 개는 충성심이 강해 좋아하는 이가 많지요. 식구로 대접받기도 합니다. 한편 개는 욕도 되는데, ‘취하면 개가 되는 사람’처럼 행실 나쁜 사람한테도 쓰이고. 두 얼굴의 개입니다.

글=서완식 어문팀장,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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