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림의 내 곁에 산책] 웃는 당신은 미인입니다

시인, 사진작가
 
Shin HyunRim.Inkjet print.


커다란 유리창, 밖이 비치는 얇은 커튼. 눈을 들어 바라보니 오후 2시의 겨울 햇살이 참으로 투명했어요. 저리 투명한 빛을 온종일 받고 쉬면 몸이 더없이 건강할 것 같았죠. 삶의 태도도 저 빛처럼 투명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생존하기 위해 저마다 가면을 쓰거나 쓸 수밖에 없는 생을 살고 있지 않나 싶어요. 우리는 솔직하고 투명하지 않으면 매번 방어적으로 살아가게 돼 있어요. 너무나 외로우면 솔직하기 힘들고, 쉽게 상처를 받지요. 가령 문자에 답이 없어도 목에 가시가 박히는 아픔을 느끼는 존재가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누군가에게 답을 못해 상대가 1미리라도 아플까봐 다음날이라도 답을 줍니다. 일주일이 지나서 줄 경우도 있어요. 전화를 걸었는데 답이 없으면 다시 전화 안 하게 되더군요. 아무리 친했대도 안 하게 돼요. 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이제는 마음이 썰렁해지는 게 싫은 거예요. 저만 그럴까요? 아니에요. 혼술 혼밥의 시대의 증후군은 이런 작은 데서 다치고 아프고 힘들어서 생긴 거라 봅니다.

어제 받은 문자 답을 오늘 줬어요. “따스하게 품어줄 분과 함께하세요”란 문자는 휴대폰 투명 유리에서 빛나고 있었어요. “따스하게 품어줄 분은 난로밖에 없네. 난로 같은 하느님뿐이네. 고맙네”라고 답을 보냈지요. 그래요. 우리는 따스하게 품어줄 난로 같은 누군가를 매일 그리워하지 않나요? 그리워하는지 잘 모를 때조차 그리워하고 있어요. 그리워하는 존재가 사람인 걸요. 강추위를 이길 수 있는 게 난로뿐이라면 참 슬플 거 같아요. 그런데 슬프게도 난로뿐이구나 싶을 때가 많아졌어요. 그러면 내가 잘못 살아왔나, 구겨진 우유갑처럼 슬퍼지지요. 작은 우유갑이 자신이라니, 참 비참하지요. 물론 고마운 지인들이 분명 있어요. 하지만 추위에 가려 잘 안 보이는 겨울이잖아요. 봄이면 잘 보일 것 같아요. 따스하면 집 밖으로 뛰어나갈 테니까요. 그런데 20대 친구들도 그렇대요. 가진 건 난로 같은 사람이 아니라, 2만원짜리 난로뿐이라는 거죠. 그래서 혼자를 어찌 이기나 고민될 때가 많다는 거예요.

저도 2만원짜리 분홍빛 플라스틱 난로를 켤 때와 아닐 때 하늘과 땅 차이임을 느낍니다. 난로 하나 켰을 뿐인데, 방 안이 화사해집니다. 1리터짜리 보온병도 말랑해지는 느낌. 자판기도 신나게 눌러지지요. 컵도 뜨거운 커피만 넣어주면 친구가 되는 기분이죠. 그럼에도 허전합니다. 물건들만으로는 진정 따스할 수 없음을 느낍니다.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소통할 사람의 목소리와 모습이요. 그럼 여기서 어떡하면 좋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조금 덜 외롭고 덜 힘들기 위해 어떡하면 좋을까요? 외로워지면 방어적이 되고, 열등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누구라도 어느 날은 황제가 되었다가, 어느 때는 노숙인 심정이 되는 걸 경험했을 겁니다. 그것은 운명처럼 반복되지요. 열등감에 빠지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고, 우울증은 불면증으로, 불면증은 자살로 몰아기도 합니다. 겨울에 자살한 젊은 연예인들이 떠오르네요. 밉상이 아닌 매력적인 모습이었지요. 왜 자살했을까요? 연예인 외에 다른 삶을 생각지 않아서고. 자신감을 잃어 우유갑처럼 작아지는 자신을 견딜 수가 없었겠죠. 잠을 못 자면 머리통을 부수고 싶을 만치 두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현대인들이 깊은 우울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작가인 저는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답니다.

길을 나서면 사람들이 나를 품어줄 것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주는 건 어떨까요? 그 품어준다는 것은 꼭 포옹만이 아니에요. 작은 친절, 미안하다, 고맙다란 인사, 간단한 답 문자 “네”라는 인기척도 얼마나 따스한지요. 미소. 이보다 따스한 난로가 어디 있을까요?

외국 여행을 다닐 때마다 놀라는 것은 우연히 얼굴을 마주치면 미소를 짓는 거예요. 처음에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라, 놀라곤 했어요. 처음 유럽 갔을 때였어요. 내게 한 여성이 웃는 거예요. 분명히 비웃는 건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동성연애자는 결단코 아니었고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어요. 그 미소가 얼마나 따스했는지, 저는 그때부터 웃는 사진을 참 많이 찍곤 했지요. 웃는 모습의 따스함은 저마다의 외로움과 슬픔, 경계심, 두려움을 풀어 내립니다.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안심, 고마운 마음이 가슴속에서 출렁거리지요. 미소는 애정이며, 나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라는 애정의 표시지요. 저는 어떤지요? 웃는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답할게요. “웃는 당신은 미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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