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의 음식이야기] 후춧가루

통후추


15세기 말 후춧가루는 같은 무게의 금가루와 가격이 같았다. 생산지 가격의 100배였다. 이슬람이 실크로드를 점령해 후추의 육로 수입이 막히자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그러자 바닷길로 후춧가루를 수입하기 위해 포르투갈이 바닷길 탐험에 나섰다. 콜럼버스는 마르코 폴로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책을 읽고 지구가 둥글다는 믿음을 갖게 되어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인도에 도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콜럼버스는 후춧가루를 찾아 1492년 포르투갈과는 반대 방향으로 떠나 신대륙을 발견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시작될 만큼 신대륙 발견은 세계사의 중대한 분기점이다.

마르코 폴로는 몽골의 대칸이 지배하는 영역이 대인도, 중인도, 소인도 ‘세 개의 인도’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콜럼버스는 마르코 폴로가 이야기한 ‘인도’ 곧 원나라를 향해 출항한 것이다. 그가 휴대한 이사벨라 여왕의 친서 수신인은 ‘위대한 칸’이었다. 콜럼버스는 1492년 8월 바하마제도의 구아나아니섬에 도착해 자신이 인도에 온 것으로 확신하고, 신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이 섬을 ‘산살바도르’라고 명명했다. ‘구세주’라는 의미다. 콜럼버스는 심한 해류 때문에 원나라 남쪽 인도에 도착했다고 생각해 그곳 사람들을 ‘인디언’이라고 불렀다.

그가 도착해 맨 처음 한 일은 후추(pepper)를 찾는 일이었다. 그러나 여러 섬을 돌아다녀 보아도 어디에도 후추는 없었다. 오히려 고추를 발견하고 이를 ‘빨간 후추’라 이름 붙였다. 고추가 ‘red pepper’라 불리는 이유이다.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도 자기가 인도를 찾아냈다고 믿었다. 그의 이러한 슬픈 신념을 애도하기 위해 후세 사람들은 그가 찾아낸 카리브해 섬들이 인도하고는 전혀 상관없지만 그래도 서쪽의 인도라는 의미로 ‘서인도제도’라고 불러주었다.

홍익희 세종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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