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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코너-노석철] 시진핑과 마오쩌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아버지 시중쉰은 모함 때문에 16년간이나 고초를 겪었다. 1962년에 불거진 ‘소설 류즈단 필화사건’은 그를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시중쉰은 혁명가 류즈단의 생애를 다룬 장편소설 ‘류즈단’ 출간을 반대했는데 오히려 이 ‘반당(反黨)소설’의 배후로 엮인 것이다.

반당분자 낙인이 찍힌 시중쉰은 모든 직책을 박탈당하고 공장 노동자로 전락했다. 시진핑이 9살 때였다. 시중쉰은 문화대혁명 때인 1967년에는 홍위병들에게 끌려가 1년간 갖은 수모를 당했다. ‘반당분자 시중쉰’이란 글씨를 목에 건채 조리돌림을 당하고 비판대에 서야 했다. 시진핑 역시 ‘반동의 자식’ 소리를 들으며 온갖 고초를 겪었다. 시진핑이 15세 때 하방(下放)을 택한 것은 홍위병들의 박해를 피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시중쉰이 정계에 복귀한 건 1978년, 65세의 나이였다. 시진핑의 청년 시절은 부자 관계의 경험을 통해 권력의 냉혹한 속성을 처절하게 느낀 시기였던 셈이다.

2007년 시진핑을 만난 싱가포르 리콴유 전 총리는 “일생동안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강한 감정 자제력을 갖고 있다. 넬슨 만델라 같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시 주석의 신중한 처신은 최고권력자가 되는 데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2013년 취임한 시 주석의 행보는 그런 평가를 뒤집었다. 시 주석은 서슬 퍼런 부패와의 전쟁으로 정적을 제거하면서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을 기치로 내걸었다. 이를 바탕으로 ‘시진핑 사상’을 헌법에 넣어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 반열에 오르고, 헌법의 임기 규정도 수정해 영구 집권을 꾀하고 있다. 이런 과정이 불과 5년 만에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종신 집권 시나리오가 취임 전부터 빈틈없이 준비된 느낌이다.

중국에 난득호도(難得糊塗)란 말이 있다. ‘바보인 척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처세술의 최고 경지를 이른다.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을 숨기고 은밀히 힘을 기른다)에도 그런 지혜가 녹아 있다.

만약 시 주석이 최고권력자 자리를 노리고 극도로 자제하며 어수룩한 척했다면 정말 무서운 내공의 소유자다. 또 5년간 추진한 모든 정책이 장기집권에 필요한 업적 쌓기였다면 이 역시 소름이 돋는다. 시 주석은 2013년 취임 직후 “강한 지도력이 없으면 이 나라는 변하지 않는다. 나는 통치 시스템을 바꿀 것”이라고 외국 사절에게 얘기했다고 한다. 관영 언론들은 2050년까지 중국몽 달성을 위해 시 주석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마오쩌둥 시절 견디기 힘든 고초를 겪었던 시 주석이 마오쩌둥식 종신 집권을 기획하는 건 아이러니다.

시 주석과 측근 그룹인 시자쥔(習家軍)은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멈추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시 주석은 군 개혁과 반부패 드라이브로 수많은 정적을 쳐내며 너무 많은 피를 봤다. 만약 시 주석이 5년 후 퇴임한다면 시자쥔 진영은 처절한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 따라서 시 주석에게 연임 제한 철폐를 통한 장기 집권 외에 퇴로나 우회로는 딱히 없어 보인다. 지난 5년 동안 정적들의 싹을 잘랐기 때문에 그의 독주를 막을 세력도 와해된 상태다. 그래도 이번에 헌법상 연임 제한이 철폐되면 향후 5년간 또다시 장기 집권 반대를 누르기 위한 공포정치가 우려된다. 서방의 ‘반(反)시진핑’ 분위기가 강화되면 잦은 충돌로 국제정세가 요동칠 수 있다. 이른바 ‘시진핑 리스크’가 한동안 중국과 전 세계를 흔들 것이다.

시 주석이 자주 인용한다는 관자(管子)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룰 수 없는 일은 하지 말고, 얻을 수 없는 것은 구하지 말며, 오래 있지 못할 곳에 머물지 말고, 다시 못할 일은 행하지 않는다(不爲不可成 不求不可得 不處不可久 不行不可復).” 시 주석의 생각은 어디에 머물고 있는 걸까.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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