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림의 인사이드 아웃] 연극계서 폭발한 ‘미투’… 가부장적 차별·억압의 반작용


 
연극·뮤지컬 관객들이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 운동(#MeToo·나도 당했다)’을 지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관객들은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폭로를 지지합니다’ 등의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신여성 도착하다’ 전시회의 포스터.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신여성 예술인이 주목받던 시절에도 연극만은 사회적 편견 속 홀대받아
억눌림의 고통 끝에 터져 나온 저항 여배우에 대한 인식 제고로 이어져야 비로소 진정한 근대화 완성되는 것



법조계에서 처음 불붙은 ‘미투 운동(#MeToo·나도 당했다)’의 불씨가 문화예술계로 옮겨온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극단 연희단거리패에서 시작해 극단 목화로 옮겨 붙은 이 불씨는 이제 기성 극단을 넘어 영화계, 그리고 인력을 양성하는 학교 시스템까지 위협하는 상황이다. 처음 연극계에서 이 불씨가 지펴졌을 때만 해도 곧 다른 장르로 옮겨 붙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왜곡된 가부장 폭력이 진보와 보수 진영을 가리지 않듯 예술적으로 장르를 가릴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아직 어느 장르에서도 연극계처럼 폭발적인 고백이 나오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왜 하필 연극계만 이렇게 미투 운동이 두드러지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한 가지가 아닐 것이다. 혹자가 말하듯 유독 곤궁해서 잃을 것이 없는 그들의 경제력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연극계의 미투 운동은 사실 예술계 안에서도 유독 오래 지속된 연극에 대한 가부장적 차별과 억압의 반작용으로 보인다.

여성 예술인들의 등장은 공연예술의 근대화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 예인들이 걸인과 똑같이 취급받았고, 여성은 문밖에 나가면 안 된다는 전근대적 인식이 지배하던 시절 여성 배역은 남자들에게 돌아갔다. 연극이 예술로 인정받기까지, 그리고 여성 배역을 여성이 연기하는 당연한 상황이 도래하기까지는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때문에 여성 연극인은 연극의 근대화를 알리는 중요한 존재였다. 하지만 가부장적 편견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출현은 그 자체로 반갑지 않은 스캔들이었다. 연극인이 지적인 신여성으로 인정받지 못한 흔적은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신여성, 도착하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전시관에는 화가 나혜석, 무용가 최승희, 음악가 이난영, 문학가 김명순 등 1세대 신여성이라 인정받는 여성 예술인들이 소개돼 있는 반면 유독 연극인이 빠져 있다. 문학과 더불어 연극은 우리나라 1세대 여성 지식인들이 현실 참여의 방법으로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분야임에도 말이다.

그들이 신여성으로 분류되지 못한 증거는 과거 언론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1920년대 현대 무용의 최승희나 배구자, 스캔들 이전의 성악가 윤심덕, 화가 나혜석은 ‘조선의 천재’라 불리며 지적인 신여성으로서 우호적인 평가를 받았다(그럼에도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가부장적 성차별은 상상을 초월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 여성 연극인들은 여전히 스캔들 메이커 이상의 대접을 받지 못했다. 토월회에서 활동한 배우 이월화와 복혜숙은 이화학당 출신의 1세대 신여성지식인들이었지만 세상은 그들의 예술보다 무대 밖 동거와 별거, 불륜, 정사로 얼룩진 선정적인 삶에 더 관심이 많았다. 소프라노 윤심덕 또한 스캔들 이후 연극배우로 데뷔하면서 지적인 여류명사에서 타락한 연예인으로 바뀌어 조명되었던 걸 보면, 여성 연극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처음부터 얼마나 철저하게 왜곡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문화예술계의 진보는 바로 이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여성 연극인들의 정체성의 변화에서 시작될 수 있다. 오랜 억압 끝에 터져 나온 그들의 저항이 여배우에 대한 인식의 제고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사회 시스템이 바뀌어야 비로소 근대화는 완성된다. 하지만 자신의 폭력을 남녀상열지사로 포장하는 가해자들의 궁색한 변명도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드러낸 상처를 선정적인 가십으로 다루는 언론 보도도 1세기 전의 전근대적인 행태 그대로인 것을 보면 갈 길이 아직도 멀어 보인다. 언제쯤 한국의 남녀는 보폭을 맞춰 함께 걸을 수 있을까.

노승림<음악 칼럼니스트·문화정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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