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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영석] 고르디우스의 매듭



기원전 800년 고르디우스는 왕가의 후손이면서도 가난한 농부였다. 어느 날 자신의 소달구지에 독수리가 내려앉는 것을 보고 왕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실제 지금의 터키인 프리기아의 왕이 됐다. 새 도시 고르디온을 건설해 수도로 삼았다. 일등공신 소달구지를 신전에 바쳤다. 밧줄로 복잡한 매듭을 만들어 기둥에 묶었다.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왕이 되리라는 신탁을 남겼다. 수많은 영웅들이 도전했지만 성공한 이는 없었다.

기원전 333년. 고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을 점령했다. 신탁을 전해들은 그는 잠시 고민을 하다 자신의 검으로 밧줄을 잘라버렸다. “간단하군”이라고 했다. 아시아의 지배자가 됐다. ‘고르디우스의 매듭’ 구전은 알렉산더 대왕 측 구술가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주장이 많지만 등장인물은 실재했다.

중국 남북조시대 북제의 창시자 고환은 아들들의 재주를 시험해보고자 뒤얽힌 실 한뭉치를 나눠주고 추려내 보라고 했다. 다른 아들들은 한 올 한 올 뽑았지만 양이란 아들은 칼로 잘랐다. 북제의 초대 황제에 오른 문선제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달걀도 있다. 신대륙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콜럼버스를 축하하기 위한 파티가 열렸다. 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시기했다. 콜럼버스는 그들에게 달걀을 세워 볼 것을 요구했다. 세우는 이가 없자 콜럼버스는 달걀 끝을 깨뜨려 탁자 위에 세웠다. 그리고 말했다. “누군가를 따라하는 건 쉬운 일이나 무슨 일이든 처음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발상의 전환이다.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난제를 해결한다는 의미다. 최근 한반도 대화 국면에서 갖가지 해결 방식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언급했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를 일괄 타결하자는 것이다. 해볼 만하지만 문제는 검증이다. 땅속 깊숙이 숨겨진 우라늄 농축시설까지 샅샅이 찾아내 조사하지 못한다면 실패의 역사는 되풀이될 수 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에는 뒷이야기가 있다. 알렉산더 대왕은 대제국을 건설했지만 사후에는 잘려나간 매듭처럼 갈기갈기 찢겨졌다. 3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이야기는 매듭을 일거에 끊어버린 것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제대로 문제를 풀려면 매듭이 상하지 않도록 하나씩 푸는 게 정도라는 것이다. 과정의 생략은 더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김영석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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