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피로써 맺은, 희생도 따르는 혈맹



‘동맹(同盟)’. 요즘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말입니다. 동맹은 개인이나 단체, 국가가 공동의 목적을 위해 행동을 같이하기로 하는 약속입니다. ‘동맹휴업’처럼 쓰지요. 동맹은 또 나라 간에 일정한 조건 아래 서로 돕기로 약속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일시적 결합의 성격을 갖지요. 중국 전국시대의 ‘합종연횡’이나 고구려의 남진을 막아보려던 신라와 백제의 ‘나제동맹’ 등 역사에 수없이 많지요. 盟은 희생(犧牲, 제물로 바쳐지는 짐승)의 피가 담긴 그릇(皿, 명)을 놓고 천지신명(明, 명)에게 ‘맹세’한다는 뜻의 글자입니다.

‘혈맹(血盟)’은 뭘까요. 원래 혈판(血判, 손가락을 잘라 흘러나온 피로 찍은 손도장)을 찍어, 즉 피로써 맹세한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피로 맺은,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면서 도와주는 동맹이란 의미가 내재된 말이라 하겠습니다. 血은 그릇에 핏방울이 톡 튄 모양의 글자입니다. 나라 간에는 盟, 개인 간에는 말(言, 언)로 하는 誓(서)라고 했지요. 맹세는 盟誓가 원말입니다.

목적을 이루고 나면 헌신처럼 버리는, 오뉴월 음식 쉬듯 변하고 상하는 게 盟인데, 안 그런 盟도 있습니다. 안중근의 글씨들 끝에는 약손가락이 잘린 혈판이 찍혀 있지요. 스스로 맹세한 게 있었던 겁니다. 모레(26일)는 안 의사가 그 맹세를 이루고 별이 된 지 108년 되는 날입니다.

서완식 어문팀장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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