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림의 인사이드 아웃] 윤이상의 ‘귀향’… 한국사회 아픔은 여전히 진행형


 
작곡가 윤이상의 추모식이 지난 30일 경남 통영 통영국제음악당에 마련된 고인의 묘역에서 유가족과 예술인들, 통영시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되고 있다. 뉴시스


16회 통영국제음악제 테마는 ‘귀향’ 개막일에 윤이상 추모식 열려
유족 “집 앞에 달걀 던지지 말기를” 보수단체는 추모식장 근처에서 확성기로 노래 ‘옹헤야’ 내보내
우리 사회 아픔, 여전히 진행형… 거장 죽음 보듬을 시민의식 필요


올해로 16년째를 맞은 통영국제음악제의 테마는 ‘귀향’이다. 2002년 시작된 이 음악제는 해마다 새로운 테마를 내세워왔다. 하지만 그 의미가 이번만큼 직관적으로 다가온 적은 없었다. 음악제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육신이 음악제 개막과 더불어 고향 땅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통영국제음악당 인근 묘역에서 가족과 소수의 관계자만 모인 가운데 비공개 안장이 이루어진 데 이어, 음악제 개막일인 지난 30일에는 민간 예술인들의 주도로 소박한 추모식이 열렸다.

거장의 귀향에 커다란 기여를 한 음악제 이사장 플로리안 림은 20명 남짓한 추모객 앞에서 “웃지만 우는 눈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독일인으로서 거장을 잃은 상실감과 슬픔을 먼저 표현했다.

“멘델스존 부조니 브루흐와, 다른 많은 작곡가 작가 정치인들과 함께 명예묘지에 묻혀 있던 위대한 예술가는 이제 영원히 그 땅에서 떠났습니다.”

윤이상이 묻혔던 가토 공원은 명예묘지(Ehrengrab)로 생전에 위대한 업적을 성취한 인물들이 잠든 곳이었다. 국가와 주(州) 정부가 특별 관리하는 이 묘지는 원칙적으로 이장이 불가능하다. 1995년 윤이상이 여기에 묻힐 때 유가족은 이장을 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이번 이장을 승인받기 위해 윤이상의 유가족은 물론 통영시와 통영국제음악재단을 비롯해 한국 정부가 나서서 독일 정부와 베를린주 정부를 설득했다.

그만큼 윤이상은 독일에 각별한 존재였다. 그가 박정희 독재정권의 탄압을 피해 독일 정부에 망명을 요청했을 때 독일은 “당신 같은 사람을 독일 국민으로 받아들여 영광”이라고 응답했다. 미망인 이수자 여사의 표현대로, 근원으로부터 버림받은 윤이상에게 독일은 삶과 예술을 주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윤이상은 안주하지 못했다. 그는 생전에 “귀국은 내 삶의 숙제이자 꿈이요, 희망이고 내 삶 그 자체”라고 여러 차례 피력했다. 통일운동단체, 음악재단 등 다수의 국·공립 기관들이 생전 윤이상의 귀국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정부의 위협과 그들이 실추시킨 거장의 명예 회복에 대한 보장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독일 망명 이후 윤이상이 돌아오지 못한 이유는 일신의 공명을 추구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한국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것은 인권과 민주화와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 그리고 통일운동이라는 민족주의 열망 때문이었다. 윤이상이 추구하던 윤리는 자신의 예술성과 나란히 전 세계에서 인정받고 환영을 받았지만, 정작 그가 태어난 나라에서는 응답이 첨예하고 엇갈렸으며 외면당했다. ‘공적(公的)’인 휴머니즘에서 출발한 윤이상의 노력이 늘 그 자신의 ‘사적(私的)’인 비극, 즉 ‘귀국무산’으로 귀결되었던 것은 아이러니다.

윤이상의 귀향은 고인의 명예 회복이란 의미를 넘어섰다. 그의 묘역은 집단적 정치 이념에 희생당한 개인의 죽음을 보듬을 정도로 세상이 변화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한국 정부의 수장이 베를린 윤이상의 묘역을 참배했고, 독일 정부가 원칙을 깨고 이장을 허락했다. 남은 건 이제 고인을 대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집 대문 앞에 날달걀만 던지지 않으면 더 바랄 게 없다는 유가족들의 소망은 참으로 소박하다. 추모식은 경건하고 침통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지만 이를 방해하는 보수단체의 확성기에서 들려오던 흥겨운 ‘옹헤야’ 노래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극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알려왔다.

노승림<음악 칼럼니스트·문화정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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