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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공화당 텃밭 ‘백인 노년층’ 흔드는 오바마케어



중간선거 핵심 이슈로 부상 오바마케어 폐기 땐 부담 증가 … 급격히 민주당 지지로 돌아서 고령화로 유권자 5∼10% 차지 … 공화당 비상 … 민주당 집중 공략 패배하면 트럼프 재선 ‘빨간불’

2010년 11월 3일, 백악관 기자회견장에 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얼굴에는 그늘이 져 있었다. 압도적 표차로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타이틀을 얻은 게 불과 2년 전이었다. 전날 중간선거에서 오바마의 민주당은 하원에서만 60석을 잃으며 참패했다. 집권과 함께 밀어붙인 건강보험법안, 일명 ‘오바마 케어’가 패배의 주요 원인이었다.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가 반년 앞으로 다가왔다. 2020년 대선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성공 여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여당인 공화당의 표정은 아주 어둡다. 지난 대선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백인 고령·고학력 지지자들이 언젠가부터 계속 등을 돌리고 있어서다. 백악관과 언론이 총기규제, 이민, 외교안보, 무역 등 다양한 현안을 두고 연일 난타전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이들에게 가장 걱정인 것은 8년 전과 마찬가지로 오바마 케어다. 8년 전에는 새 건강보험 도입에 대한 불안감이 오바마에게 패배를 안겨줬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생활 속에 스며든 오바마 케어를 트럼프 행정부가 무턱대고 없애려 하면서 반발이 커지고 있다.

로이터 통신과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는 올해 1분기 유권자 6만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9일(현지시간) 발표했다. 60세가 넘는 대졸 이상 백인 유권자를 따로 분류했을 때 이 그룹의 공화당 지지율은 40%로 민주당에 2% 포인트 뒤졌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전인 2016년에 비하면 2년 새 12% 포인트가 뒤집혔다.

주목할 건 지지 정당이 바뀐 이유다. 이 그룹에 가장 중요한 현안을 묻자 21%가 ‘보건’ 이슈를 꼽았다. 2년 전 같은 답을 한 이가 8%에 불과했던 데 비하면 3배 가까이 늘었다. 이들이 주로 걱정하는 건 오바마 케어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오바마 케어를 무력화시키면서 자신들에게 직접 피해가 미칠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오바마 케어는 가구 소득에 따라 일부 정부 보조를 받아가면서 국민 전체가 건강보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 도입됐다. 전 국민 의무가입 조항과 고용주 의무가입 조항이 양대 축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지난해 10월 오바마 케어에 따라 보험사에 지급해온 저소득층 대상 보조금(CRS)을 없앤 데 이어 12월에는 개인 의무가입 폐지 조항을 넣는 등 오바마 케어 무력화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오바마 케어에 들고 싶어 하지 않는 건강한 사람들이 대안으로 가입할 수 있는 값싼 단기건강보험(STLDI)의 적용 기간을 3개월에서 12개월로 늘리면서 젊은 가입자들의 오바마 케어 이탈을 부추겼다. 이 경우 오바마 케어에는 노인이나 환자들만 남게 돼 보험료가 급등한다.

오바마 케어가 무력화되면 특히 65세 미만 저소득층·장애인을 위한 공공보험인 ‘메디케이드’나 65세 이상이 가입할 수 있는 ‘메디케어’ 가입 조건에도 해당이 안 되는 60∼65세 이하 노인들은 고가인 민간보험 말고는 들 수 있는 게 없다. 오바마 케어가 없앤 의료 사각지대에 다시 내던져지는 셈이다. 교육 수준이 높은 백인 고령층은 이 같은 불안에 다른 집단보다 격하게 반응하고 있다.

중간선거 경합 지역구 26개에서 백인 고학력 고령층은 인구의 5∼10%를 차지한다. 이들은 투표율도 높아 승부를 결정짓고도 남을 만한 변수다. 민주당은 이 지역구 중 24개를 이기면 하원 과반을 차지한다. 래리 새바토 버지니아주립대 교수는 “공화당에 백인 고령 유권자는 핵심 지지층”이라며 “이들을 잃는다면 공화당이 거대한 쓰나미에 직면할 것”이라고 로이터에 말했다. 이를 간파한 민주당은 고령층을 대상으로 건강보험과 관련된 주제로 약 5000만 달러(530억원) 상당의 정치 광고를 퍼부어 표를 빼앗을 계획이다.

세계 주요 국가가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머릿수가 많아진 고령 유권자의 정치적 파워는 이미 수차례 확인된 바 있다.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는 고령자로 구성된 연금생활자의 약 59%가 찬성을 택하면서 승부가 결정 났다. 고령화가 특히 심한 이웃 일본에서는 이런 모습을 가리켜 ‘실버 민주주의’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을 정도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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