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축구 2연속 월드컵行 환호?… ‘속 빈 환경’ 그늘

한국 여자 축구 대표팀의 주장 조소현(흰색 유니폼)이 지난 17일(한국시간) 요르단 암만의 암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필리핀과의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5-6위 결정전에서 상대 선수와 볼을 다투고 있다. 한국은 이날 5대 0으로 크게 이겨 2019 프랑스 여자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냈다. 축구 전문가들은 “대학과 실업 축구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국 여자 축구가 지속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밝혔다. 아시아축구연맹 제공


실업팀 적어 매년 대학 졸업 후 축구 계속하는 사람 30여명 수준
프로리그 뛰는 선수 고작 200여명… 대표팀 구성도 인력풀 많지 않아
세대 교체와 원활한 훈련 어려워


“이대로는 한국 여자 축구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윤덕여호’가 지난 17일 끝난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5-6위 결정전에서 필리핀에 5대 0 대승을 거두고 사상 첫 2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을 때 기은경 한양여대 감독은 ‘위기론’을 제기했다.

지소연(첼시) 임선주(현대제철) 등 국가대표를 다수 배출한 명문인 한양여대를 이끄는 기 감독은 겉보기에 잘나가는 한국 여자 축구의 미래를 왜 걱정할까. 가장 큰 이유는 대학 선수들의 진로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기 감독은 1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말 창녕WFC가 창단돼 올해엔 31명이 실업팀에 진출했다”면서 “하지만 매년 8개 실업팀이 뽑는 선수는 각 2∼3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월급 100만원 정도 받는 번외선수(1년 계약직)를 포함해도 대학 졸업 후 축구를 계속하는 선수는 매년 30여명 수준이라는 게 기 감독의 설명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실업 진출이 어려운 선수들이 진로를 변경하는 경우가 많다. 기 감독은 “실업팀 입단만 바라보고 공을 차던 선수들이 유소년 지도자나 생활체육 쪽으로 돌아서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특히 한양여대 축구팀은 2019 시즌 뒤 해체될 예정이어서 WK리그는 물론 대표팀도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여자축구 WK리그는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 코리아나호텔에서 ‘현대제철 H CORE 2018 WK리그’ 미디어데이를 열었다. 하지만 WK리그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높지 않다.

지난해엔 WK리그의 전통 강호인 이천대교가 해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다행히 창녕이 이번 시즌부터 WK리그에 참가해 8개 팀 체제를 유지했다. WK리그가 2009년 출범했지만 실업팀들이 처한 현실은 열악하다. 피지컬 트레이너나 골키퍼 코치 없이 훈련하는 경우도 있다.

신상우 창녕WFC 감독은 “여자 실업팀이 12개 정도로 늘어나면 선수들의 진로 문제가 해결되고, 축구를 하려는 선수들도 많아질 것”이라며 “여자 실업팀을 운영하려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각 팀도 투자를 늘리며 보다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나서야 한국 여자 축구가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WK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200여명이다. 윤덕여 감독은 이들 중에서 23명의 국가대표를 뽑아야 한다. 인력풀이 적다 보니 세대교체가 쉽지 않고 원활한 훈련을 적절히 소화하기도 어렵다. 신 감독은 “WK리그에서 뛰는 대표 선수들이 남자 고교팀과의 연습경기를 통해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현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윤덕여호가 2019 프랑스 여자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 감독은 “대표팀을 자주 소집해 외국 대표팀과 평가전을 많이 치러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덕여호는 지난 3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2018 알가르베컵에서 러시아, 스웨덴, 캐나다, 노르웨이 등 유럽 강호들과 맞붙었다. 결과는 1승 1무 1패로 조 3위였지만 힘과 체격이 좋은 유럽 국가를 상대로 좋은 경험을 했다. 이 같은 경험은 이번 AFC 여자 아시안컵에서 체격 조건이 뛰어난 호주나 기량이 우수한 일본 등 강호에게 밀리지 않은 원동력이 됐다는 평이다.

윤 감독이 2012년 12월 여자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이후 한국 여자 축구는 변방의 설움을 떨쳐 냈다. 2014년 여자 아시안컵 4강에 진출하며 1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오른데 이어 이번에 사상 첫 2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도 16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한국 축구계가 투자 없이 윤 감독의 리더십에만 기대다가는 언젠가는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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