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림의 내 곁에 산책] 엄마를 떠올리며 딸을 생각한다

신현림 시인·사진작가
 
The studio of apple farm, @shin hyunrim c-print 2010


언젠가 명동에서 저스트 절크 크루와 닮은 댄스 퍼포먼스를 본 적이 있다. 주변 공기가 뜨겁고 달콤하여 발이 쉽게 떼어지지 않게 즐거웠다. 그리고 그들이 입은 전통 무예복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그 파워풀한 에너지가 워낙 강렬하여 잊히지 않는다. 내 딸이 저렇게 춤을 추는 직업을 가질 수는 없어도 흥에 젖어 기쁜 삶을 산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딸이 한국전통문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진 청소년이길 바란다. 그것은 우리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국어를 사랑하고, 우리 문화를 아끼고 이어가는 딸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매일 매일 똑같은 삶속에서 가슴이 탁 트이게 흥에 젖어 살기를 원한다. 힙합이 국악에 녹아드는 영상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던 어린 때의 딸을 기억한다. 딸이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에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한다면 더는 바랄 게 없다.

이런 생각을 갖고 사는 나는 어느 날 일제 강점기, 근대화의 물결 속에 우리 전통을 잇는데 일생을 바친 인간문화재 한 분을 취재하게 되었다. 거칠거칠하면서 미끈미끈 빛나는 탈의 감촉, 고동빛 색감이 한없이 구수하고 미묘한 정감을 자아내는 탈을 쓰고 판을 벌이는 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와 답교놀이 장인인 인간문화재 한유성 선생에 대한 자료를 찾으면서 그분의 아내는 어찌 사셨을까 궁금했다. 따님을 만나 아버지 곁에서 묵묵히 사신 어머니 인생을 말씀해 주셨다. 시집을 오자마자 평생 똑같은 일을 하셨고, 아버지와 같이 탈을 만들고 산대놀이할 때 입는 옷도 재봉을 다하셨다는 말을 했다. 무려 32개 종류의 탈과 옷을 다 재봉하시며 사셨단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은 매일 똑같은 일들을 반복한다. 그녀 어머니의 삶에 나는 다시 귀 기울였다.

“아버지와 함께 동행하는 날이 숨통 트이는 날이셨고, 인생의 즐거움이셨죠. 아버지는 엄마가 한복을 입고 가는 걸 좋아하셨고, 늘 양장보다 한복만 입길 바라셨죠.”

눈앞에 그림이 예쁘게 그려졌다. 숨통이 트이는 날이란 말에 나는 꽂혔다. 나는 나의 엄마를 떠올렸다. 곧 5월 어버이날이라 더 그리운 엄마가 떠올랐다. 그리고 존재감 없이 살다가는 수많은 여자의 일생을 생각했다. 민주화 투사로, 정치인이셨던 아버지 뒷바라지와 자식에게 평생을 바치고 떠난 나의 엄마와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깊은 연민과 숭고함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이런 마음도 늦게 깨달아진다는데 문제가 있다. 인간문화재 한 선생님의 따님도 시인으로 살면서 철이 들고 나서야 아버지와 엄마의 삶이 보였다고 한다. 좀 더 일찍 부모님의 인생을 알려고 했더라면. 몹시 아쉬워하셨다. 다 비슷한 거 같다. 나도 엄마가 살았을 때 “엄마 꿈은 뭐야?”라고 묻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그리고 평안도 사투리를 고스란히 살려 쓰던 백석의 시를 엄마 살았을 때 읊어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이산의 슬픔을 안고 살던 엄마가 백석의 시를 통해 평북 선천 고향을 만나실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또 하나 후회는 엄마의 일생을 세세히 기록해뒀어야 했다. 결국 나는 엄마의 삶을 다 모른다는 것이다. 엄마의 외가식구들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우리 엄마의 숨통 트인 날은 어떤 날이었을까 하고 기억을 더듬었다. 엄마의 슬픔과 아픔을 잊게 해준 날이라.

그리고 보니 “엄마는 언제가 제일 행복해?”라고 묻지도 못했다. 어릴 때는 엄마에게 야단맞은 기억이 컸는데, 나이 들수록 엄마 때문에 매일 매일이 선물이었음을 깨닫는다. 엄마의 숨통 트인 날은 한 선생님의 아내처럼 집밖을 나선 날이 아닐까. 약사셨던 나의 엄마는 도매상에 약을 떼러 가셨다가 영화 보는 날이 숨통 트였던 날이셨을 것이다. 햇살 따스한 날에 엄마랑 걸었던 시장이며, 영화 보러 번데기 사서 들고 가던 기억이 아른아른 떠올랐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엄마가 그리워서. 엄마가 들려주던 외가 이야기. 눈이 펑펑 내리던 평북 선천 국수고개 아랫마을의 외갓집을 나의 상상 속에서 그려나갔다. 백석의 시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남을 통해 나를 돌아다보는 일은 언제나 가슴 먹먹하면서 따스했다.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리며 늘 내 딸을 생각한다. 그렇게 인연의 끈은 이어져 수많은 사연도 이어진다. 나는 딸에게 속삭였다. 딸아, 엄마는 네가 모국어를 사랑하고, 한국전통문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진 청소년이길 바라. 그건 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일이란다. 그리고 매일 매일 똑같은 삶속에서 가슴이 탁 트이게 흥에 젖어 살기를 기도한단다.

신현림 시인·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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