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샛길의 발견



어릴 때 동생은 달리기하듯 피아노를 연주했다. 특히 ‘고양이춤’을 최대한 빠르게 혹은 눈 감고 연주하는 걸 좋아했다. ‘스피드’가 기준이 되다보니 연주하는 모양새는 여간 경망스러운 게 아니었지만 그 덕에 웃음 유발 효과가 좀 있었다. 우리가 아이였을 때 그런 접근은 ‘장난’으로 여겨졌다. 정답은 바이엘과 체르니와 소나타로 올라가며 고루고루 여러 곡을 연습하는 쪽에 있는 것처럼 통했고, 나는 그대로 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악보 없이는 어떤 곡도 연주할 수가 없다. 악보가 있기만 하면 연주가 가능하다는 뜻도 아니다. 한마디로 나는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운 사람’ 정도에 그쳐 있다. 피아노 교습의 효용이 연주 자체에만 있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습관처럼 몸에 박힌 곡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당혹스럽기도 하다. 반면에 동생은 지금도 ‘고양이춤’을 눈 감고 연주한다. 동생에게 악보 같은 건 그때나 지금이나 거추장스럽다. 손가락을 건반 위에 올려두면 자동적으로 재생되는데 뭐가 문제겠는가. 동생은 ‘고양이춤’의 달인이 된 것이다.

피아노만이 아니다. 어쩌면 모든 영역에서 목표물의 전경을 보며 한 걸음씩 내딛는 방식이 유일한 정답은 아닐지도 모른다. 딱 하나만 치고 빠지는 방식이 더 생존할 수 있다면 그게 진짜 위대한 샛길 아닐까.

이런 생각은 새로운 깨달음에 그치지 않고 10, 20대에 관한 과도한 환상을 품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때부터 분야별로 하나씩만 반복했다면 어땠을까, 이런 환상은 이미 내가 놓쳐버렸다는 전제 위에 세워진 것이라 더 견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조금 의기소침해지면 피아노학원을 운영하시는 한 분이 일흔 살의 도전자 얘기를 해준다. 도레미 음계도 몰랐던 할머니가 피아노학원에 등록한 후 한 곡만 매일 연습했고, 1년 후 손녀의 생일 때 그 곡을 연주한 이야기. 나는 그 연주를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상상만으로도 조금,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놓친 시간이 아니라 놓칠 수도 있고 잡을 수도 있는 시간을 향해서 고개를 돌리는 것이다.

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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