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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혜림] 판문점과 널문리



2002년 여성부(현 여성가족부) 출입기자단은 선진국의 가족친화 정책을 취재하기 위해 독일 출장을 갔었다. 당시 기자들은 독일 정부 관료들을 만난 자리에서 주제에서 벗어난 질문을 쏟아냈다. 통일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처럼 동서로 갈렸다 통일을 이룬 독일이니 궁금한 것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관료들은 통일을 대비한 준비로 풍부한 예산 확보를 꼽았다. 오랜 단절에서 비롯된 이념과 문화 차이 극복방안 준비 등등 내심 이런 답을 기대했기에 살짝 입을 삐죽였다.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와 화해의 상징으로 거듭난 베를린 장벽.’ 현장에서 만난 베를린 장벽은 그 수사와는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장벽을 헐 때 나왔다는 콘크리트 조각을 크기에 따라 값을 매겨놓고 팔고 있었다. 동서로 나뉜 베를린을 오갈 때 거쳐야 했다는 검문소인 ‘체크포인트 찰리’에선 돈을 받고 비자 스탬프를 찍어주었다. 역사의 현장을 만난다는 비장한 각오로 찾았던 거리에서 맞닥뜨린 생뚱한 풍경. 실망감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 웃음, 요즘 반성한다. 관념이 아닌 현실에서의 통일, 그것은 이브닝드레스가 아니라 고무줄 치마를 입은 아내와 같은 일상이다. 그때는 미처 몰랐었다. 우리의 통일은 노래 가사에서나 마주치는 것으로, 현실감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게다.

오는 27일 체크포인트 찰리보다 수천 배 삼엄했던 판문점이 무장해제한다. 이날 그곳에서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난다. 남북 정상은 일시 중단이 67년이나 지속됐던 한국전쟁에 마침표를 찍기 위한 방안을 논의한다. 이 만남을 취재하기 위해 국내외 350여개 매체와 2800명 이상의 취재진이 사전등록을 했다. 1951년 10월 한국전쟁의 휴전회담이 열리면서 세계뉴스의 초점으로 떠올랐던 판문점. 이곳에 다시 한 번 지구촌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임종석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의 희망처럼 판문점 회담이 미국과 소련의 냉전 종식을 이끌었던 몰타 회담보다 더 상징적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판문점이 휴전과 종전(終戰)의 상징에서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종전이 통일의 마중물이 되어 판문점이 통일의 상징으로 자리하길 간절히 바란다. 판문점이 옛 이름인 ‘널문리’를 찾고 체크포인트 찰리처럼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관광객 기념사진 배경에서 만난 널문리에서 비장미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참으로 좋겠다.

김혜림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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