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태용] 평양냉면 주세요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평양냉면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어렴풋하게 남대문 시장에 있는 식당에 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두는 이 집이 최고야라고 했던 말을 들었던 것도 같은데 평양냉면에 대한 기억은 뚜렷하지 않다. 음식을 지독하게 거부했던 유년시절의 입맛을 떠올리면 아마 밍밍하고 심심한 맛에 한 젓가락도 채 먹지 않았을 것이다. 서른이 넘어서야 평양냉면을 제대로 먹었고, 점점 그 맛에 빠져들어 평양냉면집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지금은 다양한 평양냉면집의 미묘하게 다른 맛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이고, 가장 선호하는 집을 물어보면 서슴없이 대답할 수도 있다. 최근에도 그 집에 앉아 친구들과 평양 옥류관 냉면 맛은 어떨까하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의 키워드 중 하나가 평양냉면이다. “평양냉면을 어렵사리 멀리서 가져왔습니다. 아니 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 김정은 위원장의 말에 미소 이상의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는데, 긴박한 평양냉면 공수작전과 해외 언론의 관심, 그날 평양냉면집의 초만원사례 기사를 보면서 이 모든 것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이라는 단순한 말이 떠오르고, 다양한 감각이 집중되어 있는 우리의 혀와 입을 즐겁게 하는 것으로 어려운 문제들이 너무도 쉽게 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할아버지의 고향은 황해도 봉산군 구연면 신원리이고, 해방 전에 남하해 종로에서 관철여관과 목재소를 운영했다고 한다. 질곡한 역사 속에서 피난민의 신분은 아니고 나름 남쪽에서 자리를 잡고 살았다는 아버지의 말들 사이사이 겨울에 먹던 동치미냉면과 이북식 만둣국 이야기가 흘러나오곤 했다. 어릴 적 혀에 닿았던 맛은 평생을 따라다닌다고 한다. 그 맛을 한 번 더 맛보고 천천히 삶을 놓아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언젠가 옥류관 평양냉면을 배달어플로 주문해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보다 직접 가서 부모님과 아이들에게 사주고 싶다. 아이들이 ‘엥, 이게 무슨 맛이야’라고 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김태용(소설가·서울예대 교수)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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