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림의 인사이드아웃] 판문점 울려퍼진 ‘4박자 아리랑’… 진취성·동질감 담아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27일 판문점에서 전통의장대의 사열을 받고 있다. 전통의장대는 ‘아리랑’을 연주했다. 국민일보DB


전통적인 3박자 원형이 아닌 4박자의 행진곡풍 편곡 버전
‘아리랑’은 남북한이 공유하는 문화이자 정서적 차이를 함유
남북교류는 물론 서방세계에 한민족의 정체성을 소개하는 중요한 지렛대로 자리매김


11년 만에 개최된 남북 정상회담의 감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이 회담의 논제는 애초에 ‘비핵화’와 ‘종전 협상’이었다. 딱딱한 군사적·정치적 협상 테이블이 그처럼 감동적이고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던 것은 역사가 만들어준 아이러니 때문이다. 38선이 갈라지고 남북이 제각기 정권을 세운 지 어언 70년. 당연히 하나였던 사회가 분열되고 서로 배척하게 된 것은 38선을 그은 당사자인 미국과 소련, 그리고 남북한 모두 예상치 못한 역사의 실수였다. 그 실수를 이처럼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되돌리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잠시 월경을 할 정도로 파격적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도 남북한은 일부 형식적 한계는 결국 넘어서지 못했다.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못해 국기 게양식이 생략됐고 국가도 연주되지 않았다. 대신 조선시대 전통 복장을 한 전통 의장대가 사열한 가운데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이날 남북한 두 수장 앞에서 연주된 아리랑은 전통적인 3박자 원형이 아닌 4박자의 행진곡풍의 편곡 버전이었다. 슬픔을 초월하다 못해 수동적으로 관조하는 ‘한(恨)’에만 주목하던 아리랑이 이렇듯 힘차고 박력 있는 분위기로 소개되기 시작한 시점은 남북한 교류의 시작과 겹쳐 있다.

사실 ‘아리랑’은 남북한이 공유하는 문화이자 동시에 정서적 차이를 함축하는 문화이기도 하다. 북한은 아리랑을 강한 민족 저항 정신의 산물로 인식한다.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에 담긴 저항 정신에 주목하며, 우리 민족이 일제 강점기에 ‘아리랑’을 부르며 민족혼을 지켜왔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실제로 ‘아리랑’은 민족 정서가 너무 강하다는 이유로 일제 강점기에 금지곡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이런 북한 ‘아리랑’의 진취적인 정서가 남한에 처음 노출된 것은 1990년 판문점에서였다. 남북 체육 단일팀 구성을 논의하던 회담장에서 북측이 76년 북한 공훈예술가 최성환이 작곡한 ‘아리랑 환상곡’의 음원을 들려준 것을 계기로 아리랑에 대한 색다른 시각이 전해졌다. 그 후 남한에서도 국악계와 대중음악계를 중심으로 활기차면서도 진취적인 아리랑 버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밴드 YB가 리메이크한 4박자 아리랑은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케이스에 해당한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 최성환의 ‘아리랑 환상곡’은 이후 남한뿐 아니라 서방세계에서도 화제가 돼 미국 유럽 등지에서 자주 연주돼 왔다. 2008년 별세한 미국 지휘자 로린 마젤이 이끄는 뉴욕 필이 평양 공연에서도, 2012년 파리에서 있었던 북한 은하수 관현악단과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연합 공연에서도 이 작품은 빠지지 않고 연주됐다. 이처럼 ‘아리랑’은 다양한 정서로 진화해 남북교류는 물론 서방세계에 남북한 공통의 한민족의 정체성을 소개하는 중요한 지렛대로 자리매김했다.

박근혜정부 당시 국방부가 조선족이 편곡한 아리랑을 ‘북한풍’이라는 이유로 군부대 내 금지곡으로 지정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북 정상회담 당일 바로 그 국방부 소속의 전통 의장대가 연주한 ‘아리랑’의 진취성은 북한 정서와도 맥이 통하는 편곡이었다. 그 ‘아리랑’마저 없었다면 이 역사적인 순간 우리는 어떤 음악을 국가 대신 연주할 수 있었을까. 같은 핏줄이라면서도 서로를 미워하고 배척하도록 종용하던 이율배반의 시대가 소통과 평화의 바람에 쓸려 저 멀리 떠나가고 있다. 남북한에서 서로 다르게 진화한 문화예술과 전통을 스스럼없이 공유하는 가운데 더욱 풍성해질 한반도 문화를 기대해봄직하다.

노승림<음악 칼럼니스트·문화정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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