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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고세욱] 단일팀 시대와 병역 문제



“이병 손흥민!” “흥민아, 너보고 군대 가라 한다.”

지난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북 단일팀 결성이 구체화되자 관련 기사 댓글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이는 바로 손흥민이었다. 단일팀과 손흥민이 도대체 무슨 관계이기에 네티즌의 관심을 끈 걸까.

논리는 이렇다. 현재 한국축구 최고 스타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손흥민이다. 그런데 손흥민의 유일한 고민이 병역 문제다. 손흥민은 2012 런던올림픽(당시 동메달), 2014 인천아시안게임(금메달)에서 대표팀으로 뛰지 않아 병역 혜택을 받지 못했다. 병역법상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할 경우 현역 입대할 가능성마저 있다. 한창 주가를 올리는 시점에서 뜻하지 않는 경력 단절은 본인이나 팬들에게는 엄청난 손실이다. 여기서 단일팀 문제와 충돌된다. 남자축구에서 단일팀이 이뤄지면 손흥민은 낯선 북한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 결국 시간 부족 등으로 팀워크가 흔들리며 금메달 획득과 손흥민 병역 면제도 물 건너갈 것이라는 게 네티즌들의 생각이다.

대한축구협회도 이를 인식한 듯, 남자축구는 단일팀 구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선을 그었다. 하지만 단일팀 딜레마의 상징이 손흥민일 뿐 4개월도 채 남지 않은 아시안게임에서 단일팀 구성에 따른 남자선수들의 병역 논란은 계속 불거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남북 단일팀은 2020년 도쿄올림픽부터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개막을 한 달도 안 남기고 구성된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보다는 낫다지만 아시안게임 때까지 시간이 빠듯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와의 조율,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설득, 단일팀 선수 선발 방식과 엔트리 조정 등을 거치면 남북이 함께 훈련할 시간은 훨씬 줄어든다. 또 4년을 기다리며 땀과 눈물을 흘린 대표팀 선수들의 노력을 무시할 수도 없다. 폭넓은 스포츠 교류와 경기력의 시너지 효과를 고려한다면 약 2년3개월 남은 도쿄올림픽을 목표로 단일팀을 추진하는 것이 정도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남북 두 정상이 서명한 문서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없다. 남북 단일팀은 앞으로 올림픽·아시안게임뿐 아니라 월드컵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도 추진된다. 바야흐로 스포츠계에 남북 단일팀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면 차제에 올림픽 메달과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야 병역 혜택을 얻는 현 시스템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편법만 양산하게 되고 또 다른 부작용을 마주해야 한다.

당장 체육계에서는 남자팀이 아닌 여자팀 위주의 단일팀 구성안이 흘러나오고 있다고 한다. 민감한 병역 문제를 피할 대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칫 남녀 차별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여자 선수들이라고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를 대표하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또 메달에 따른 연금 수령은 여자 선수들에게도 민감한 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군대 안 가는 여자 선수들이 총대를 메라”는 식으로 일을 추진하면 적잖은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미투 운동 등에서 보듯 요즘은 양성 불평등 구조가 무너지고 있는 시대다.

남북 단일팀의 의의를 살리고 싶다면 내부의 희생을 최소화하고 선진화된 보상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하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도박 같은 단기 대회 성적에 따라 병역 면제 여부가 갈리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목소리는 일찌감치 있어 왔다. 대표팀에서 꾸준히 헌신한 선수들에게 부여하는 ‘포인트제’ 도입은 이런 점에서 검토해 볼 만하다. 국제대회 성적이나 출장 횟수 등에 따라 ‘포인트’를 주면서 일정 기준을 넘으면 병역을 면제하거나 연기해주는 것이다. 단일팀 훈련 참가 등에도 가점을 주면 시대적 의의를 살릴 수 있다. 단일팀이 대세로 접어드는 시대에 “이병 손흥민”이라는 냉소적 반응에 대한 분명한 답이 있어야 한다.

고세욱 스포츠레저부장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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