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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패션계 큰 별 이영희, ‘바람의 옷’ 입고 하늘나라로



한국 패션계의 큰 별이 스러졌다.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사진)씨가 17일 0시40분쯤 별세했다. 향년 82세.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복의 현대화와 세계화에 평생을 바쳤다. ‘바람의 옷’ ‘색의 마술사’ ‘날개를 짓는 디자이너’로 불렸던 그는 한복의 색과 선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는 데 온힘을 다했다.

그는 마흔 살에 디자인을 시작한 늦깎이였다. 자녀들 학비에 보태려고 이불 장사를 시작했다가 한복에 매료돼 한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전통복식학자이자 민속학자인 석주선(1911∼1996)을 만나면서 한복의 참 멋을 알게 됐고 한복 전도사로 나섰다. 그는 한국 최초라는 수식어를 여러 개 갖고 있다. 2001년 분단 후 남한 디자이너로서는 처음으로 평양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그해 독도에서도 패션쇼를 열었다.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파리 프레타포르테 쇼에도 참가했다. 1993년 모델은 저고리 없는 한복을 입고 맨발로 파리 컬렉션 무대에 섰다. ‘르 몽드’ 패션 전문기자는 ‘바람의 옷’이라고 불렀다.

이후 그는 2000년 뉴욕 카네기홀 패션 공연, 2004년 뉴욕 이영희 한복 박물관 개관, 2007년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한복 전시 등을 통해 한복을 세계에 알렸다. 2008년 구글 캠페인 ‘세계 60 아티스트’에 선정되는 등 한복 디자이너가 아닌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로 인정받기도 했다.

이영희의 한복은 우리 옷을 대표했다. 200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때 21개국 정상이 입은 두루마기는 그가 지은 옷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한복 의상도 그의 작품이다. 고인은 우수한 우리 모시를 ‘MOSI’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알리는 방안을 구상 중이었다. 우리는 그가 모시로 지은 바람의 옷을 못 보게 됐다.

고인의 딸인 이정우 디자이너는 “한 달 전 폐렴으로 입원하셨지만 병세가 좋아졌었는데 갑작스럽게 악화됐다”면서 “믿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유족으로는 이 디자이너를 비롯한 3남매가 있다. 빈소는 삼성병원장례식장 17호. 발인은 19일이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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