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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사회적 분위기와 원칙 사이 ‘교묘한’ 선택… 병역법 일부 헌법 불합치



2001년 첫 공개 선언 이후 17년간 논란이 지속됐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28일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결 방향을 잡았다. 헌재는 대체복무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 보호를 위해 입법 노력을 다하지 않은 국가의 책임을 물었다. 그러면서도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이나 소집을 기피하는 자를 처벌하는 조항은 합헌으로 남겨둬 법적 안정성을 유지했다. 법적 안정성을 지키면서 달라진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선택이었다는 평가다.

이번 결정의 핵심은 병역의 종류를 규정한 병역법 5조 1항이다. 이 조항은 현역, 예비역, 보충역, 병역준비역, 전시근로역을 정의하고 설명한다. 예컨대 ‘현역’은 ‘징집이나 지원해 의하여 입영한 병’으로 규정한다. 헌재는 2004년과 2011년 위헌법률심판에서 이 조항을 심리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당시엔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않은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하는 병역법 88조 1항만 심리했다.

헌재는 이번에 병역법 5조 1항에 대해 6(헌법불합치)대 3(각하)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해당 조항이 군사훈련을 전제로 하는 병역만 규정하고 있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보호하지 못하므로 대체복무제를 마련하라는 뜻이다. 헌재는 “2004년 대안이 있는지 검토할 것을 권고했는데 14년이 지나도록 입법적 진전을 이루지 않은 채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하고 있으므로 양심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지만 해당 법은 잠정적으로 유지된다. 국회는 2019년 12월 31일까지 관련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헌재는 병역거부 행위를 처벌하게 하는 88조 1항에 대해선 과거 두 차례와 동일하게 합헌 결정을 했다. 다만 과거와 달리 4(일부위헌)대 4(합헌)대 1(각하)로 다양한 의견 분포를 보였다. 지난 두 차례는 모두 7(합헌)대 2(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이 났다.

합헌 논리도 차이를 보였다. 이전 헌재는 “국가안보라는 대단히 중요한 공익을 달성하기 위한 조항” “국가안보와 병역의무라는 중대한 공익을 실현하려는 입법 목적이 인정된다”며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내세웠다. 이번 결정에서 합헌에 손을 든 강일원 서기석 재판관의 의견을 살펴보면 위헌 의견으로 볼 여지가 다분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두 재판관은 “해당 조항은 ‘정당한 사유’ 없이 병역을 거부한 경우 처벌하도록 한다”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해석했다. 이어 “법원이 ‘정당한 사유’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처벌조항 자체에는 위헌 소지가 없지만 대체복무제를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처벌하는 것은 양심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봤다. 즉 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해 처벌하지 않으면 된다는 논리다.

그동안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이 일 때마다 과도한 기본권 침해라는 주장과 누구나 공평하게 병역의무를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 수년간 격돌했다.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논리도 가세했다. 대체복무제에 대한 논의는 계속 있어 왔지만 가시화되지 못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해마다 늘고 법원의 하급심 판결에서는 무죄 선고가 잇따랐다.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놓기도 했다.

줄곧 논란의 대상이었던 처벌조항이 합헌으로 남았지만 위헌 결정을 주장했던 시민단체 및 변호사단체 등은 만족스러운 결과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한 변호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향후 처벌은 금지하면서 이전에 처벌받았던 사람들은 구제하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기교’를 헌재가 부렸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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