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네가 먼저” 기싸움, 유엔총회 종전선언 불투명



종전선언 논의가 북한과 미국의 현격한 입장 차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구체적 진전이 없는 답보상태에 빠진 것으로 31일(현지시간) 알려졌다. 9월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이뤄내겠다는 시나리오가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우리 정부는 종전선언의 조기 성사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과 우려를 충분히 이해하는 만큼 미국에 종전선언 합의를 강력하게 요구하지는 않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정부는 조력자 역할을 적극적으로 맡을 계획이지만 북·미 양측이 직접 대화를 통해 종전선언을 포함한 비핵화 논의를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미는 현재 종전선언 ‘빅딜’ 수순을 둘러싼 난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며 서로 상대방을 향해 양보를 촉구하는 상황이다. 북한은 종전선언의 전제조건으로 체제 보장을 요구하고 있고, 미국은 ‘선(先)비핵화’ 입장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미국은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가 없으면 종전선언도 없다’는 원칙을 정한 것은 아니지만, 북한이 구체적인 비핵화 결과물을 내놓지 않는 상태에서 종전선언에 합의하는 것은 꺼리는 분위기다. 북한이 미군 유해 송환이라는 선물을 내놓았는데도 미국이 계속 침묵을 지키는 이유다.

스티븐 멀 국무부 정무차관보 대행은 최근 미국을 방문했던 한국의 여야 원내대표단에게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방북해 핵프로그램 전체 리스트와 시간표 제시를 요구했으나 북한이 체제보장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맞섰던 사실을 전하기도 했다.

종전선언의 주체도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우리 정부는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는 남·북·미 3자가 종전선언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북한과 중국이 원한다면 중국이 참여하는 남·북·미·중 4자 종전선언도 수용할 수 있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중국의 종전선언 주체 참여 여부와 관련해 미국과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북·미 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도 대북 제재가 느슨해지지 않도록 주력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남북 공동사업 추진을 위해 ‘대북 제재의 일부 예외 인정’을 미국에 요구한 데 대해 일부는 양해가 이뤄졌고, 계속 협의가 진행되는 부분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미국 정부는 개성공단 재개에 대해선 예외 인정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개성공단 가동 재개를 본격적인 남북 경제협력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북 제재 금수 품목인 북한산 석탄이 러시아를 거쳐 한국에 유입된 사건과 관련해선 한·미 간 협의가 진행됐고,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북한은 평안북도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해체에 외국 전문가들의 참관을 불허하고 있지만 막바지 순간에 입장을 바꿔 전격적으로 참관을 허용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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