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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김종민] 역사에서도 교훈 얻지 못하면



나라 잃은 조선의 역사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기득권에 매달린 지배층이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줬다
미래는 예측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건국절 등 소모적 논쟁 접고 미래지향적 유연성 갖춰야


올해 73주년을 맞는 광복절의 의미는 남다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구한말 못지않게 심상치 않다. 경제는 활력을 잃은 채 추락하고 있다. 국론 분열과 계층 갈등은 심화돼 좀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건국절을 둘러싼 논란을 거듭하고 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대립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자랑스러운 역사이든 부끄러운 역사이든 모든 역사에는 배울 점이 있다. 중요한 것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거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교훈을 얻는 일이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이나 친일파 문제도 중요하지만 500년 이상 존속하던 조선이 왜 망했는지 냉철하게 살펴보는 시선을 우리는 가져야 한다. 메이지 천황이 부국강병을 통해 일본의 근대화를 완성하는 동안 그와 같은 해에 태어난 고종은 45년간 재위하면서 무엇을 했는지 되짚어보는 것은 미래를 위해 필요한 작업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 경제학과 교수 대런 애스모글루는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포용적인 정치·경제 제도가 번영을 불러오고 지배계층만을 위한 수탈적이고 착취적인 제도는 정체와 빈곤을 낳는다고 했다. 조선은 양반 사대부 지배층이 특권을 독점한 사회였다. 양반이 기득권을 잃게 될 우려가 있는 제도 혁신은 조종의 법제에 어긋난다는 등의 이유로 철저히 거부하고 배격했다.

임진왜란 3년 전 서인 정권은 국가적 위기가 닥쳐오는 줄도 모르고 정여립 역모사건을 빌미로 1000명 이상의 국가 인재를 희생시켰다. 이후 병자호란 때까지 30년의 시간이 있었지만 정쟁으로 국력을 소진하다 청나라에 항복하는 굴욕을 겪었다. 그럼에도 조선의 지배층은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절대왕조 체제가 더욱 공고해지는 기이한 현상까지 벌어졌다.

유럽은 1450년 구텐베르크가 활판인쇄술을 발명한 지 50년 만에 약 2000만권의 책을 생산하며 지식혁명을 이뤄나갔다. 세계 최초로 발명된 금속활자를 갖고 있었음에도 조선의 지배층은 지식독점권을 놓지 않으려 출판을 엄격히 제한하고 서점 개설을 불허했다. 국가개혁론인 유형원의 ‘반계수록’ 간행에 100년이나 걸린 나라였다.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세상이 바뀌는 줄도 몰랐던 조선은 60년간 지속된 세도정치로 삼정이 문란해지며 경제와 산업이 정체되고 국토는 피폐해져 버렸다. 사농공상의 신분제와 양반관료의 특권, 착취적 지방행정과 조세제도로 나라가 깊이 병들어 갔고 병역제도와 환곡 등 복지제도까지 착취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망국의 위기 앞에 조선은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지도자는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는 통찰력과 분별력, 혁신성을 갖고 일류국가로 발전시키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뚜렷한 비전이 제시돼야 하며 미래지향적인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꿈과 비전 없이 과거와 현재에 집착해 미래를 잊어버린 국가는 발전하지 못했고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문명사적 전환기에는 그런 국가가 예외 없이 쇠퇴하였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국권을 침탈한 일제의 만행과 치욕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봉건 막번 체제하에 있던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통해 오랜 기간 역동적으로 국가역량을 축적해가면서 외세의 위협에 맞서 철저히 자신을 개혁하고 국가적 위기를 극복한 역사는 이제 냉정히 바라보고 평가할 때가 되었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1년 동안 각 분야의 적폐청산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적폐청산은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인 국가개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고 결코 파괴적이거나 정치보복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훌륭한 명분이라도 유연성을 잃으면 박제된 도그마요 독선일 뿐이다.

미래지향적이기 위해서는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계층과 지역 간에 화합하는 개방된 사회를 이뤄가야 한다. 무엇보다 인사 문제가 중요하다. 한비자는 “어리석은 사람이 등용돼 다스림에 쓰이거나 공적 없는 사람이 높은 지위를 얻게 되면 아랫사람이 원망하고 그렇게 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더 이상의 코드인사는 지양하고 천하의 인재를 등용해 국가발전에 공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광복절의 의미는 현재진행형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금년은 더욱 그러하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지혜의 90%는 알맞은 때에 현명해지는 것이다. 정치권은 건국절 논쟁 같은 소모적 정쟁을 그만두고 민생 안정과 국가 발전을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만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던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김종민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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