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5만원 넘는 잠바 입어본 적 없지만 北의 남동생에게 전해 줄 50만원짜리 샀다”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인 박기동 할아버지가 15일 경기도 안산 자택에서 북에 있는 두 동생에게 선물할 겨울 잠바와 속옷 등을 가방에 넣고 있다.안산=사진공동취재단


“북에 있는 남동생 입으라고 50만원 주고 겨울 잠바를 샀어요. 추운 데니까 따뜻하게 입으라고.”

오는 20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참가하게 된 박기동(82) 할아버지는 북에 두고 온 여동생 선분(73)씨와 남동생 혁동(68)씨를 만날 생각에 요즘 밤잠을 설친다. 평생 15만원 넘는 점퍼를 사 입어본 적 없다는 박 할아버지는 15일 남동생에게 줄 유명 브랜드 점퍼를 들고 마냥 행복해했다. 북한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한 듯 치약 비누 양말 속옷 등 생활용품 선물도 잔뜩 챙겨놨다.

황해도 연백군 출신인 박 할아버지는 3남2녀 중 장남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박 할아버지 가족은 강화군으로 피난 왔는데, 부모님이 어린 두 동생과 함께 고향 집에 식량을 가지러 갔다가 생이별을 하게 됐다. 박 할아버지는 “쌀을 쪄서 고향집 마구간에 묻어놓은 걸 가지러 갔다가 인민군에게 잡힌 것 같다. 어머니가 동생들 데리고 집에 들어가다 영원히 이산가족이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당시 서울 배재중학교로 유학을 와 있던 박 할아버지는 헤어진 동생들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고 했다. 헤어지기 전 6살 여동생의 손을 잡고 동네를 걸어다닌 기억이 거의 전부다. 동생들을 만나 가장 먼저 묻고 싶은 것은 역시 부모님 소식이다. 언제 돌아가셨는지, 묘는 어디에 모셨는지가 가장 궁금하다고 했다. 그는 “(남한에서) 열심히 살긴 했는데, 만나뵙지도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그게 한으로 남는다”고 했다.

올해 89세인 황우석 할아버지는 헤어질 때 3살이었으나 이제 71세 할머니가 된 딸 영숙씨를 이번에 만난다. 황 할아버지는 “오래 산 보람이 있네요”라며 말을 시작했다. 그는 “68년 만의 부녀 상봉이라는 게 한국에서나 있을 참 소설 같은 얘기”라며 “빨리 통일이 돼 왕래하고 연락도 주고받을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어 딸에게 “지금까지 살아줘서, 살아서 만나게 해줘서 고맙다.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렇게 지금까지 살아줘서 진짜 고맙다”는 말을 미리 전했다.

4·27 판문점 선언의 합의 사항 중 하나인 이번 상봉 행사는 20∼26일 금강산에서 진행된다. 20일부터 사흘간은 남쪽 이산가족이 북쪽 가족을 만나고, 24일부터는 북쪽 이산가족이 남쪽 가족을 만난다.

한편 남북은 지난달 16일 서해지구 군 통신선 정상화에 이어 이날 동해지구 군 통신선도 완전 복구했다. 동해지구 군 통신선은 유선통화와 문서 교환용 팩스 송수신 등 모든 기능이 정상화됐다. 동해지구 군 통신선이 정상화되면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위한 통행과 통신 지원이 원활하게 이뤄질 전망이다. 동해지구 군 통신선은 2010년 11월 산불로 완전 소실된 이후 8년여 만에 복구됐다.

공동취재단, 최승욱 김경택 기자 apples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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