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여행

[And 여행] 산과 호수·고택의 만남… ‘낭만가도’를 달린다

길안면 묵계리에 세워진 소박하고 단정한 모습의 묵계서원. 임동면 임하호 수변 산자락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지례예술촌(위쪽 사진부터).
 
관광두레 ‘안동반가’의 고추장 담그기 체험.
 
수몰되지 않도록 15m 올려심기한 용계리 은행나무.
 
길안면 묵계리의 한적한 정자 만휴정이 바로 아래 시원한 물길의 송암폭포와 어우러져 황홀한 풍경을 펼쳐내고 있다. 물소리와 나뭇잎에 이는 바람소리 등이 그윽한 정취를 자아낸다.
 
안동의 맛과 멋을 담아 내는 ‘안동식선’의 안동찜닭정식.


경북 안동은 시 단위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넓은 면적을 갖고 있다. 버스나 기차 등 대중교통으로 안동에 도착하면 여행지를 돌아다니는 것이 막막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걱정을 붙들어 매도 좋다. 관광두레 ‘버스로기획’의 ‘낭만가도’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명소를 돌아보는 교통편과 식사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안동의 길을 따라 가을이 주는, 길이 건네는 정서를 만끽할 수 있다.

‘합시다. 러브(love). 나랑, 나랑 같이….’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남녀 주인공 고애신(김태리)과 유진초이(이병헌)가 명대사를 읊은 곳이 안동의 만휴정(晩休亭)이다. 안동 시내에서 남쪽으로 30㎞쯤 떨어진 길안면 묵계리. 작은 마을 하리에서 길안천에 합류하는 ‘묵계(默溪)’ 물길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그윽한 정취의 정자를 만나게 된다. 조용히 흐른다고 해서 ‘묵계’라는 이름을 얻은 물길에 송암폭포가 자리한다.

정자 도착 직전 폭포를 건너다보게 되는 산길 옆 비탈이 정자의 풍모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명소다. 폭포의 시원한 물길과 단아한 정자가 기가 막힌 조화를 이루며 수묵화에서나 볼 수 있는 비경을 펼쳐놓는다. 자연을 다치게 하거나 거스르지 않고 딱 맞는 퍼즐처럼 아늑한 자리에 정자의 추녀 끝이 날렵하다.

길을 따라 폭포 위에 닿으면 물줄기가 시작되는 암반 위에 팔작지붕의 정자가 올라 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어졌다. 정면을 누마루 형식으로 개방해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고, 양쪽에는 온돌방을 뒀다. 물길 위에는 통나무를 이어붙인 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를 지나면 정자의 쪽문으로 들어서게 된다. 인적이 드물어 한적한 정자 마루에 올라서면 그림 같은 풍경이 눈앞에 가득하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흘러가는 물소리와 나뭇잎에 이는 바람소리 등이 온몸을 휘감는다. 누구든 잠깐이나마 정자를 통째로 소유한 주인이 될 수 있다. 정자 안에 김양근의 만휴정중수기와 김양근·김굉 등의 시가 걸려있다.

만휴정의 주인은 조선 전기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보백당 김계행이다. 마흔아홉 늦은 나이에 대과에 급제해 쉰이 넘어서야 벼슬살이를 시작했다. 예순일곱까지 관직에 있었지만 연산군의 폭정으로 말년에는 ‘벼슬을 그만두겠다’는 사직소를 올리느라 바빴다. 그러다가 무오사화 이후 일흔한 살이 돼서야 고향 땅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다. 정자의 현판을 애초에 ‘쌍청헌’이라 했던 것을 ‘늦은 귀향’의 소회를 담아 ‘저물 만(晩)’에 ‘쉴 휴(休)’라는 이름을 붙였다.

계곡에는 암각서도 있다. ‘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내 집에는 보물이 없으니, 보물이라면 오직 맑고 깨끗함이다)이란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만휴정이 품고 있는 자연도 그지없이 맑고 깨끗하다.

만휴정 입구에는 묵계서원이 자리한다. 조선 숙종 때 세워진 소박하고 단정한 서원으로 평생 대쪽 같은 삶을 살았던 청백리의 표상이자 안동의 선비 정신을 퇴계 이황보다 앞서 뿌리 내린 보백당과 조선 초기 선비 옥고(玉沽) 선생을 기리고 있다.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광풍에 훼철됐던 것을 후대에 도내 유림과 안동 시민들이 재복원할 정도로 유서 깊고 명망이 높다. 내부에는 본 강당인 입교당과 문루인 읍청루와 동재, 진덕문 등이 있어 서원의 격을 더한다. 서원이 건립될 당시 궁이 아닌 곳에서는 굵직하고 둥근 나무를 사용해 건축물을 만들기 어려웠던 시절이기에 읍청루를 바치고 있는 둥근 기둥의 특색이 돋보인다. 입교당을 떠받치고 있는 투박한 돌덩이들은 반듯하게 쌓는 것보다 더 견고하고 튼튼하다고 한다.

지례마을은 조선 숙종 때 대사성을 지낸 지촌 김방걸의 후손들이 350여년 동안 살았던 집성촌이다. 1945년 무렵 전성기에는 60여 가구가 모여 살았다고 한다. 임하댐 건설로 지례마을이 수몰 위기에 처하자 의성 김씨 지촌파가 1663년에 지은 종택과 서당 등을 1986년에 그대로 옮겨놓고 ‘지례예술촌’으로 불렀다. 길 입구에서도 차로 굽이굽이 30∼40분은 족히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은거지다. 깊은 산속에 오롯하게 자리 잡은 고택은 넉넉한 임하호를 품고 있다.

산과 호수와 은은한 모습의 고택, 바스락거리는 가을이 어우러진 풍경은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즈넉하다. 덕분에 이곳은 ‘지구 자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호주 기자들이 찾아와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본 주인이 ‘지구 자전 소리가 들리시나요’라고 말하자 그 문구가 현지 신문에 제목으로 뽑혔다는 것이다.

고택 담장을 끼고 산책길이 조성돼 있다. 긴 코스는 아니지만 호수와 산과 고택과 무엇보다 안동 선비의 속 깊은 정서가 숨어 있어 꼭 걸어봐야 할 아름다운 길이다. 탈춤공연, 국악공연 등 다양한 공연 행사가 수시로 열리며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고택 체험 및 숙박도 가능하다. 총 14개의 온돌방에서 한옥체험이 가능하다. 방문을 열어놓으면 맑은 산 공기가 들어오고 푸른 하늘과 호숫가가 그대로 살아있는 액자가 된다. 가장 인기 있는 방은 다른 방들과 독립돼 있는 지산서당이다.

지례예술촌에서 박곡리로 나와 도연교를 지나 내려오면 커다랗게 자라 있는 용계리 은행나무가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 은행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다. 길안초등학교 용계분교 운동장에 있던 것을 임하댐 건설로 수몰되지 않게 ‘공중부양’(상식·올려심기)시킨 것. 하루에 1∼5㎝씩 3년 동안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귀하고 귀한 나무다.

수령은 700여년. 바람이 불면 수백만 개의 은행잎이 사르륵거리는 소리를 내며 떨리고 큰일이 있을 때면 소리를 내며 울었다고 한다. 낭만가도 상품은 은행나무 아래 푸른 잔디 위에서 로맨틱한 식사를 제공한다. 안동 농부들이 들판에서 일하다 먹곤 했던 ‘들밥’을 제대로 만들어 내는 유기농 점심은 도심에서 접하기 어려운 시골밥의 정석을 보여준다.

▒ 여행메모

안동 전통음식 맛보기·고추장 담그기·전통한복체험 등 즐길거리 풍부


안동 관광두레는 전통체험, 카페, 주민여행사 등 3개 주민사업체가 긴밀한 상호협력을 맺고 있다. 고추장 담그기, 전통한복체험, 셀프웨딩체험 등 다양한 즐길거리를 운영하는 ‘안동반가’(054-841-0050), 안동의 맛과 멋이 담긴 메뉴로 카페를 운영하는 ‘안동식선’(070-4912-1767), 낭만 있는 안동 여행상품을 제공하는 ‘㈜버스로기획’(1661-0416)이 중심이다.

버스로기획은 대중교통으로 안동을 찾는 젊은층이나 ‘내일러’(내일로 티켓을 이용해서 1주일 동안 전국을 여행하는 학생) 등을 대상으로 건전하고 알찬 안동 여행을 만들고자 안동의 숨겨진 명소만 찾아다니는 ‘안동 빅5’, 계절별 안동을 만나는 ‘낭만가도’ 등의 여행상품을 운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낭만가도 상품은 넓은 정원이 펼쳐진 지례예술촌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고 출발해 천연기념물 용계리 은행나무로 향한다. 커다란 은행나무 아래서 미리 준비한 도시락으로 가을 피크닉을 즐긴다. 이어 묵계서원을 거쳐 만휴정에서 국화차 한 잔을 들고 계곡에서 들리는 가을 소리를 즐기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요금은 4만9000원. ‘안동 빅5’ 투어는 도산서원, 봉정사, 제비원을 거친다.

고택 안주인과 종부 5명은 안동의 전통음식을 수호하고 알리기 위해 ‘안동 서로가’를 결성, 내림음식 도시락을 내놓는다. 수애당 안주인 문정현씨, 수졸당 종부 윤은숙씨, 치암고택 안주인 장복수씨, 칠계재 고택 안주인 류춘영씨, 정재종택 종부 김영한씨가 참여한다.

안동=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