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만에 인식표로 돌아온 이등중사 박재권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원들이 25일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견된 국군 전사자 추정 유해를 수습하고 있다. 발견된 2구의 유해 중 1구는 1953년 전사한 박재권 이등중사(병장)로 추정된다. 유해 근처에 있던 인식표(작은 사진)에 박 이등중사의 이름이 영문으로 표기돼 있다. 철원=사진공동취재단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에서 국군 전사자로 추정되는 유해가 처음 발견됐다. 분단 이후 DMZ에서 유해발굴 작업이 이뤄진 것은 처음이다. 화살머리고지 전투 종료 하루 전날 안타깝게 21세 나이로 전사한 박재권 이등중사로 추정된다. 65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박 이등중사는 DMZ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국군 전사자 1만여명 중 귀환한 첫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국방부는 25일 “전날 진행된 화살머리고지 지뢰제거 작업 도중 지표면에서 허벅지 뼈를, 지표면 아래 약 20㎝ 깊이에서 갈비뼈와 두개골 조각을 발견했다”며 “유해는 2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유해 1구는 박 이등중사로 추정됐다. 당시 이등중사 계급은 현재의 병장에 해당된다. 유해 인근에 있던 인식표에는 ‘대한 8810594 PAK JE KWON 육군’이라고 표기돼 있다. 부대 전사자 명부를 확인한 결과 인식표는 6·25전쟁 당시 국군 2사단 31연대 7중대 소속 박 이등중사 유품이었다.

박 이등중사는 1931년 10월 2일 태어났다. 52년 3월 21일 입대, 이듬해 7월 10일 강원 철원 내문면 하덕검리(화살머리고지의 옛 지명)에서 전사했다고 병적에 기록돼 있다. 국군 2사단과 미군 9군단이 참전한 화살머리고지 전투는 6월 29일부터 30일까지, 7월 6일부터 11일까지 두 차례 치열하게 전개됐다. 박 이등중사는 전투가 끝나기 하루 전인 7월 10일 전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유해는 병사들이 도열해 추모의 예를 갖추는 가운데 목관으로 옮겨졌다. 국방부는 관을 태극기로 감싼 뒤 DMZ 밖 임시봉안소에 안치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현재 80세, 70세인 박 이등중사의 여동생 2명에 대한 유전자(DNA) 분석을 통해 신원을 최종 확인할 계획이다.

정부는 DMZ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첫 성과물이라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SNS 글을 통해 “박재권 대한육군 이등중사가 전사한 지 65년 만에 우리에게 돌아왔다. 이제야 그의 머리맡에 소주 한 잔이라도 올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는 이 땅에 전사자가 생기는 일도, 65년이 지나서야 유해를 찾아 나서는 일도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방부는 지난달 19일 맺은 ‘4·27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에 따라 지난 1일부터 지뢰제거 작업을 진행했다. 이 지역에서 현재까지 지뢰 19발과 폭발물 187발을 제거했다. M1소총 3정과 대검, 헬멧 등 유품 1270여점도 발견했다. 한 수통에는 30여발 탄환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어 치열했던 전투 상황을 짐작케 했다. M1소총 1정은 미처 발사되지 못한 탄 8발이 장전돼 있는 상태였다.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선 앞으로도 상당히 많은 유해가 발굴될 전망이다. 이 지역은 6·25전쟁 당시 남북이 치열하게 공방을 펼친 철의 삼각지 전투지역 중 하나다. 51년 11월부터 53년 7월까지 국군 2·9사단, 미군 2사단, 프랑스대대와 중공군이 전투했다. 이곳엔 국군 전사자 200여명, 미군과 프랑스 전사자 100여명뿐 아니라 북한군과 중공군 유해도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남북 군 당국은 11월 말까지 이 일대 지뢰를 완전히 제거하기로 합의했다. 내년 2월 남북 공동 유해발굴단을 구성한 뒤 4월부터 10월까지 공동 유해발굴을 진행할 예정이다.

김경택 기자, 철원=공동취재단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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