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출판

“오바마와 길가에 앉아 아이스크림 먹다 연인 됐다”

미셸 오바마의 자서전 ‘비커밍’에는 그의 성장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들도 실려 있다. 출생 이듬해인 1965년 가족들이 미셸(앞줄 오른쪽)을 데리고 찍은 기념사진, 프린스턴대 재학 시절 교정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그의 최근 모습이 담긴 사진(위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책의 에필로그를 장식하는 내용은 지난해 1월 미국 백악관을 나서던 순간을 묘사한 장면이다. 저자는 남편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는 행사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취임식 무대를 봤을 때 “울컥하는 감정을 다스려야 했다”고 한다. 영부인 자리를 내놓게 된 게 아쉬워서 그랬던 건 아니었다. 취임식 풍경이 기대와 너무 달라서였다.

“압도적으로 백인과 남성만으로 구성된 장면이 있었다. …단상에 앉은 300여명의 귀빈을 보니, 새 백악관은 (다양성을 추구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억지로라도 웃으려던 노력을 그만두었다.”

트럼프 취임식에 참석한 전임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점만으로도 이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펴낸 주인공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미국 최초의 흑인 퍼스트레이디였던 미셸 오바마(54)다.

출간 전부터 세계적 관심을 모았던 그의 자서전 ‘비커밍(BECOMING)’(웅진지식하우스·책 표지)이 14일 31개 언어로 번역돼 세계 곳곳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비커밍’을 “올해 최대 블록버스터 중 하나”라고 평가했는데, 실제로 이 책은 역대 미국 대통령이나 영부인이 펴낸 자서전 중 사상 최고액(약 730억원)에 판권이 팔려 화제가 됐다.

아마존에선 예약 판매만으로 베스트셀러 순위 정상에 올랐다. 미셸은 출간과 함께 ‘북 투어’를 벌이는데, 일각에서는 이 행사를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둔 출정식으로 보고 있다. 미셸이 유력 대선 주자로 거론되고 있어서다.

책에는 파란만장했던 미셸의 인생 역정이 담겨 있다. 시카고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인종차별을 감내해야 했던 유년기, 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에서 수학하고 버락을 만나 만들어간 러브스토리, 퍼스트레이디에 올라 마주한 환희와 좌절의 순간들….

눈길을 끄는 내밀한 이야기가 적지 않다. 예컨대 버락의 구애는 거침이 없었다고 한다. 둘은 길가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당시를 복기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버락이) 살짝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빤히 보았다. ‘키스해도 되나요?’ 그가 물었다. 나는 그에게 몸을 기울였다. 그러자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트럼프를 향한 독설도 곳곳에 등장한다. 트럼프는 자신의 성추행 전력을 떠벌리곤 했다. 피해자에게 “나는 너를 해치고도 얼마든지 무마할 수 있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미셸은 이 발언을 거론하며 이렇게 적었다. “상대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태도다. 그것은 가장 추악한 형태의 힘이다. 온몸이 분노로 떨렸다.”

자서전의 본문 챕터 제목은 ‘내가 되다’→‘우리가 되다’→‘그 이상이 되다’ 순으로 이어진다. 목차만 일별해도 제목을 ‘비커밍’으로 명명한 이유를 가늠할 수 있다. 미셸은 자신을 “어쩌다 그만 평범하지 않은 여정을 밟게 된 평범한 여성”이라고 소개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내게 무언가가 된다는 것은 어딘가에 다다르거나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 진화하는 방법, 더 나은 자신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과정이다. …인내와 수고가 둘 다 필요하다. 무언가가 된다는 것은 앞으로도 더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생각을 언제까지나 버리지 않는 것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