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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건… 고독한 천재가 아니라 창조적 짝패

밴드 비틀스를 이끌었던 존 레넌(오른쪽)과 폴 매카트니. 만약 두 사람이 만나지 못해 비틀스가 탄생할 수 없었다면 둘은 어떤 삶을 살게 됐을까. 조슈아 울프 솅크는 ‘둘의 힘’에서 레넌은 “임시직과 사소한 범죄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호인이지만 실패자가 됐을 것”이라고 적었다. 매카트니에 대해서는 “교사가 되거나 아니면 자신의 영리함에 의존하면서도 여전히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 수 있는 다른 직업을 골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마크 저커버그(왼쪽)와 셰릴 샌드버그. 트위터 캡처




박찬욱과 정서경. 영화 좀 본다는 사람이라면 두 사람의 관계를 모를 리 없다. 영화감독 박찬욱은 ‘친절한 금자씨’(2005)부터 최근작인 ‘아가씨’(2016)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각본을 작가인 정서경과 함께 썼다. 그런데 둘은 어떤 방식으로 ‘공동 각본’을 탈고해왔을까.

박찬욱이 2013년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소개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두 사람은 작업을 할 때 한 대의 컴퓨터 본체를 공유한다. 하지만 키보드와 모니터는 각각 자신의 것을 쓴다.

“정 작가가 무언가를 치면 제 모니터에 그 글자가 뜨고, 제가 뭔가를 쓰면 정 작가 모니터에 떠요. (각본을 쓸 때) 쉼표 하나를 쓰는 것까지도 함께 (논의해서) 하는 거죠. 언제나 재밌어요. 정 작가와 일을 하면 어딘가에 걸려서 헤매는 시간이 별로 없어요.”

박찬욱의 설명은 머리는 두 개이고 몸통은 하나인 샴쌍둥이를, 혹은 수어지교(水魚之交)나 지기지우(知己之友) 같은 사자성어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런데 이런 파트너십의 사례는 희귀한 게 아니다. 다른 분야에서도 비슷한 케이스는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은 무슨 이유에서 짝을 지어 뭔가에 도전하는 것일까. 파트너십의 파워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1+1=?

‘둘의 힘’은 인류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위대한 2인조”의 세계를 그려낸 신간이다. 미국에서 심리학 분야의 글을 주로 쓰는 저널리스트 조슈아 울프 솅크가 썼다. 공교롭게도 이 책의 한국어판 추천사를 쓴 사람이 정서경인데, 책의 끄트머리에 등장하는 그의 글엔 박찬욱이 5년 전 팟캐스트에서 했던 말을 되새기게 만드는 글귀가 곳곳에 적혀 있다.

“(박찬욱 감독님과 저는) 함께 일을 할 때에 시나리오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습니다. 마주 앉아 그냥 씁니다. 그러다 서너 사람이 더 참여해서 회의를 할 때면 (둘이 작업할 때와는 달리)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다 설명해야 한다는 것에 놀라움을 느끼게 되죠.”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런 파트너십의 가치를 깎아내리곤 한다. 누군가와 팀을 이뤄 뭔가에 도전하는 건 2인3각 경기를 할 때처럼 번거롭고 힘든 일이라고만 여긴다. 그러면서 대단한 성취를 거둔 건 혼자 어떤 문제를 붙잡고 씨름한 “고독한 천재들”이었다고 넘겨짚는다. “세계의 역사는 결국 위대한 인물의 전기일 뿐”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저자는 세상을 바꾼 건 “고독한 천재”가 아니라 짝패들이었다고 강조한다. 그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꺼내드는 사례는 한두 개가 아니다. 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 반 고흐, 서로 영감을 주고받은 작가 CS 루이스와 JRR 톨킨,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 결국 이 책의 핵심은 “한 쌍이 창조적 기본 단위”라는 거다. 궁합이 맞는 사람끼리 화학적으로 결합해 시너지를 내면 ‘1+1=2’가 아니라 ‘3’이나 ‘4’가 될 수도, 혹은 ‘무한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저자는 셋이나 넷이 아닌 ‘둘의 힘’에 주목했을까.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2인조는 가장 유동적이고 유연한 관계이다. 두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들만의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 혼합체에 한 사람만을 더해도 상황은 더 안정적이 되지만, 이런 안정성은 자칫 창조성을 질식시킬 수도 있는데, 왜냐하면 역할과 힘의 구도가 고정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위대한 2인조”는 일반적으로 어떻게 만나게 되며,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간극이 아닌 통로”로 거듭나는 지점은 어디인지 들려준다. 인상적인 내용을 꼽자면 “위대한 2인조”는 대부분 아주 유사하면서 동시에 매우 다르다는 특징을 지녔다는 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화학적인 결합이 진행돼 두 사람이 “우리”라는 유기체로 거듭나면 일반인은 짐작하기 힘든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믿기 힘들지만 둘만의 “사적 언어”가 만들어지고, 말의 리듬이나 통사 구조까지도 비슷해진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CEO인 마크 저커버그와 이 회사 COO인 셰릴 샌드버그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저커버그는 과거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30초 동안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다른 사람과) 한 시간 동안 열었던 회의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교환할 수 있다.”

짝패의 역학 관계

비딱하게 말하자면 ‘둘의 힘’은 몇 가지 사례를 가져와 일반화시켜버린 책이라고 깔아뭉갤 수 있다. 하지만 책을 펼치면 그 사례가 너무 많고, 분석이 그럴싸해 결국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책에는 누구나 알 만한 명사들의 내밀한 사생활도 한가득 담겨 있다. 마치 남녀 간의 연애담 같은 위대한 짝패들의 만남과 결별 스토리도 들려준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두 사람의 역학 관계를 분석한 ‘변증법’이라는 챕터다. 저자는 이름난 2인조의 유형은 ①스타와 감독 같거나 ②물과 그릇의 모양새를 띠거나 ③몽상가와 행동가로 나뉘곤 한다고 분석한다. 여기서 ①번이나 ③번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2인조에선 스타와 감독으로 각각 역할 분담이 이뤄져 한 명이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할 때가 많다. 한 명이 몽상가적인 기질을 지녔다면 다른 한 명은 행동가의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문구만으로 가늠이 안 되는 건 ②번인 ‘물과 그릇’일 듯하다. 책에 담긴 설명은 이렇다. “자연 상태에서 물은 흩어지기 쉽다. 이들은 자주 흥분하며, 모험의 가능성과 위험 모두를 체현한다. …그릇 유형의 인물은 질서와 명확성을 보인다. 채울 것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담든지 무엇을 내놓도록 돕든지 간에, 그 성격을 고스란히 취한다.”

이 책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듀오는 영국 밴드 비틀스의 쌍두마차였던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다. 둘은 물과 그릇 같은 상보적인 관계였다. 레넌이 물이었다면 매카트니는 그릇이었다. 지근거리에서 이들을 지켜본 엔지니어 제프 에머릭의 회고록을 보자.

“폴은 신중하고도 체계적이었다. 항상 공책을 들고 다니면서 거기에 깔끔한 필적으로 가사와 코드 변화를 질서정연하게 적어 넣었다. 반면 존은 항상 자기가 어떤 아이디어를 휘갈겨놓았던 종잇조각을 찾아 헤매기 일쑤였다. …폴은 외교관이었다. 존은 선동가였다.”

여기까지 읽으면 이런 반론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그래도 세상엔 “고독한 천재”가 내놓은 결과물이, 그런 천재가 세계의 질서를 바꿔놓은 사례가 셀 수도 없이 많다고.

그런데 책을 읽으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영감이나 도움을 받았던 게 결국 창의성의 밑천이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게 만든다. 저자는 당부한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고립의 방에서 벗어나서 연계의 혼잡 속으로 들어가라”고 말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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