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주고 자금 모으는 가상화폐공개(ICO) 사기주의보



지난 4월 독일의 스타트업 세이브드로이드는 가상화폐공개(ICO)를 통해 5000만 달러(약 530억원)를 모은 뒤 잠적하는 ‘가짜 사기극’을 벌였다. 야신 한키르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의 트위터에 공항에서 출국하는 사진 등을 올리고 “고마웠다. 통신 끝(over and out)”이라고 적었다. 다행히 한키르는 이튿날 ‘ICO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캠페인이었다’고 밝혔다.

세이브드로이드 사례는 ICO의 위험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ICO는 자금을 편리하게 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일반 투자자가 ‘사기성 ICO’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사실상 전무하다.

27일 금융 당국 등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국내 기업들의 ICO 실태 점검을 마무리하고 조만간 ‘범정부 가상화폐 태스크포스(TF)’에 결과를 보고한다. 현재 국내에서 ICO는 전면 금지돼 있다. 국내 기업들은 스위스 등 ICO가 허용된 해외에서 투자금을 모은다. 스위스는 자국에서 ICO를 할 때 현지인을 고용하고 연봉 1억원 이상을 줘야 하는 등의 조건을 걸고 있다. 일각에선 해외 ICO로 국부가 유출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국내 ICO 허용에 신중한 입장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5월 1450개 ICO를 조사한 결과 18%인 271개가 가짜, 표절 등 사기성이 짙은 ICO였다고 보도했다. 가상화폐 271개가 사실상 휴지조각이었다는 뜻이다.

ICO 열풍은 블록체인 시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블록체인 시장 규모는 2016년 201억원에서 2022년 3562억원(추정)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블록체인 업체들은 ICO로 기술 개발자금을 모은다. 투자자들로부터 가상화폐 ‘이더리움’을 받고 자신들이 발행한 ‘코인’을 나눠준다. 업체들은 이더리움을 현금화해 개발자금에 쓴다. 가상화폐 시장이 활황이면 ICO로 더 많은 돈을 모을 수 있다. 현대BS&C는 스위스에 법인을 설립하고 ‘에이치닥’을 발행해 약 3000억원의 자금을 모으기도 했다. 현대BS&C 정대선 사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손자다.

ICO는 업체 입장에선 수수료 등 각종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기업공개(IPO)처럼 복잡한 심사 과정도 필요 없다. 하지만 이런 장점이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우선 업체가 블록체인 시스템을 제대로 개발하는지 투자금은 어디에 쓰는지 투자자들의 검증이 쉽지 않다. 업체들은 어떤 블록체인을 개발하고 있는지 ‘백서(white paper)’를 통해 공개하지만 현란한 전문용어가 많아 전문가들도 명확히 이해하기 어렵다.

ICO 업체들이 블록체인 기술 개발에 성공할지도 아직까진 미지수다. 한호현 경희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백서를 통해 공개한 수준의 블록체인을 완벽히 구현한 업체는 전 세계에 한 곳도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 국내 ICO 업체들은 현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고, 올해 말∼내년 초 가동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김유석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상무는 “실제 시스템이 얼마나 현실에서 작동하는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블록체인 기술이 개발돼도 투자자들이 나눠받은 가상화폐가 어떤 가치를 지닐지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ICO에 참여하려면 투자자들이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기존 가상화폐를 사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 보유자들의 ‘물량 떠넘기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정말 블록체인 기술력이 있는 업체라면 굳이 ICO가 아니더라도 벤처캐피털(VC) 등을 통해 투자자금을 유치할 수도 있다. 홍준영 한국핀테크연합회 의장은 27일 “ICO를 어느 시점에서 허용하더라도 기술이 검증된 업체에 제한적인 액수만 허용돼야 한다”며 “무작정 허용하면 큰 폐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Key Word - 가상화폐공개(ICO)

블록체인 개발 업체가 가상화폐를 발행해 투자금을 끌어모으는 것. 기업공개(IPO)가 투자자에게 주식을 주는 방식이라면 ICO는 업체가 발행한 가상화폐를 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투자자는 현금 대신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가상화폐를 업체에 투자하고, 해당 업체가 발행한 가상화폐를 받게 된다. 업체는 투자자로부터 받은 비트코인 등을 현금화해 블록체인 개발에 사용한다.

나성원 임주언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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