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미술] ‘불시착 우주선’ 같은 DDP에 딱 어울리는 미래 인간

서울 동대문구 DDP 앞에 인간의 미래를 상징하는 것 같은 금빛 청동 조각 두 점이 서 있다. 김영원 조각가가 제작한 ‘그림자의 그림자-꽃이 피다’(왼쪽)와 ‘그림자의 그림자-길’이다. 이들 인체 조각은 정면과 뒷면 어디서 봐도 사람의 앞면과 뒷면이 합체돼 있어 마치 ‘내 속의 또 다른 나’를 보는 기분을 준다. 최현규 기자
 
김영원 조각가. 최현규 기자


서울 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빠져나온 내 시야로 ‘인간 꽃’이 쏘옥 들어왔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몸체와 콘크리트 다리(‘미래로’) 교각이 어우러져 생긴 틈 사이로였다. 그 조각이 활짝 핀 꽃처럼 서 있는 게 보였다. 원로 조각가 김영원씨(73·전 홍익대 교수)의 그 작품은 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럼에도 평소엔 눈에 띄지 않다가 이 조각에 대한 관심이 생기자 예기치 않은 위치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준 것이다.

자하 하디드의 DDP와 맞짱 뜨는 조각

DDP에 그 인간 조각이 등장한 것은 2016년 가을부터다. 서울디자인재단이 개관 2주년을 맞아 기획한 김영원 조각전 ‘나-미래로’를 개최한 것이 계기가 됐다. 작가는 전시가 끝난 뒤 ‘미래로’ 입구에 설치된 ‘그림자의 그림자-길’(이하 길)을 기증했고, 하나로는 외로울까봐 8차선 장충단로를 마주한 DDP 전면부에 전시했던 ‘그림자의 그림자-꽃이 피다’(이하 꽃이 피다)도 한시적으로 그대로 두기로 했다. 지하철에서 나오면서 보았던 작품은 ‘꽃이 피다’다.

2014년 3월 세계적인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1950∼2016)가 설계한 DDP가 개장했을 때 한국인들은 탄성을 질렀다. 우리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종류의 건축물이었기 때문이다. 거대하면서 기괴했다. 규모도 규모지만,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를 차지하는 엄청난 면적을 풍뎅이 등짝 같은 유선형 덩어리로만 채운다는 것은 산업화시대 이래 우리가 건축에 대해 가져온 통념을 깨는 것이었다. 게다가 어디든 지상과 연결돼 그곳이 지하인지, 지상인지 헷갈리는 이 건축물을 두고 당시 언론은 ‘불시착한 우주선’이라고 불렀다. 알루미늄 패널의 은빛이 주는 우주적인 색감까지 생각하면 딱 들어맞는 별칭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조각전을 기획했을 때, 후보군에 오른 국내외 여러 조각가들이 손사래를 쳤다는 후문이다. 규모가 주는 압도감, 금속성의 재질이 주는 위화감을 당해내기가 쉽지 않아서다. 최근 만난 김영원 조각가는 “그래, 한국인인 내가 한번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성공한 것 같다. 8m 장신의 금빛 인체 조각 두 점은 DDP 건축물이 주는 차가움, 근접하기 어려운 권위를 누그러뜨리며 전체적으로 공간에 온기를 부여한다. 무엇보다 김영원의 청동 조각은 형식과 주제 면에서 미래적인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 이 미래적인 건축물과 조응한다. 조각에서 느껴지는 당당함과 조화로움은 DDP와 마찬가지로 금속성의 재질과 유선형의 형태를 취하는 데서 온다. 생각해보라. 흙을 덕지덕지 발라 미라처럼 늘어뜨린 것 같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인체 조각이 거기 어울리겠는가. 이 조각들은 광화문 해머링맨의 22m에 비하면 키가 작지만 충분히 크다는 느낌을 준다. DDP에 대적할만하면서도 DDP와 어울려 그곳에 있으면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순간 이동하는 기분이 들 정도다.

자신을 해체해 새로운 나를 창조

무엇보다 김영원의 금빛 인간 조각 2점이 품은 미래적인 가치가 DDP의 미래지향적인 특성과 어울린다. 우선 ‘꽃이 피다’를 보자. 인체 형상의 부조를 앞뒤로 이어 붙여 마치 절단된 인체의 단면이 합체한 듯하다. 그러면서 하나의 하체에서 6개의 상체가 카드패처럼 차르르 퍼지는 형태를 취한다. ‘인간 꽃’ 같다. 마치 내 안의 여러 정체성이 꽃처럼 활짝 피어나는 것 같은. 그래서 복수의 정체성을 뜻하는 ‘멀티 페르소나’의 상징 조각물 같기도 하다.

멀티 페르소나는 김난도 교수 등 서울대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 꼽은 올해의 트렌드 가운데 하나다.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에서 배우들이 쓰는 가면을 뜻한다. 현대인은 가면을 쓰듯 다양하게 분리되는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 책의 주장하는 바다.

전통적으로 사람의 정체성은 혈통과 직업을 기반으로 형성돼 왔다. 그런데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인공지능 시대의 대두로 직업적 안정성이 흔들리는 노마디즘의 시대가 열렸다. 현대 사회에서 정체성의 분리, 정체성의 다원화는 자연스럽고 필연적이 됐다는 것이다. 이제 나 자신을 뜻하는 ‘myself’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여야 한다. 직장에서와 퇴근 후의 정체성이 다르며, 평소와 덕질할 때의 정체성이 다르다는 것이다.

출근해선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다가 퇴근 이후엔 바리스타로 사는 이중의 삶, 또 일년에 한 번씩은 해외 테마 여행을 떠나며 여행 작가로도 사는 삶…. 그렇게 우리의 내면엔 여러 개의 꽃으로 피어나고자 하는 소망이 숨어 있지 않은가.

DDP로 이어지는 콘크리트 다리 ‘미래로’ 초입에 서 있는 인체 조각 ‘길’은 어떤가. 앞뒤 어디서 봐도 사람의 정면과 뒷면이 한꺼번에 있는 ‘아수라 백작’ 같은 이상한 조각품이다. 앞으로 걸어가면서도 동시에 뒤를 보고자 하는 인간의 내면을 닮은 조각. 그러니 미래를 향해 가면서도 과거를 성찰하는 자세로 살자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이 두 조각은 200m 정도 떨어져 있어 한 시야에 잡힌다.

김영원이라는 조각가 이름은 몰라도 그가 제작한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상’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 기념조형물이 시사하듯 그는 1970년대에 사실주의 조각으로 작가 인생을 시작했다. 추상조각이 대세였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이 근대화 산업화를 하려면 합리주의 정신이 필요하며 그 합리주의 정신을 담은 것이 사실적인 조각이라고 생각했다. 목발을 짚은 장애인 소년, 아이를 업은 채 광주리를 머리에 인 여인 등을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듯 사실적인 형상에 담아냈다. 그러다 직설적인 표현에 조금씩 흥미를 잃게 됐다. 평면의 부조에서 인간의 형상이 떠오르는 듯한, 즉 부조와 환조를 합친 조각인 ‘중력무중력’ 시리즈를 시작하며 변화를 모색했다.

그랬던 그에게 전환점이 왔다. 1990년, 43세 때였다. 당시 그는 명상 체조와 기수련을 해오던 터였는데 눈 오는 어느 날 빙판길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냈다. 차가 비탈로 굴러떨어지며 죽음과 맞닥뜨렸던 그 찰나의 순간, 차에 같이 탔던 지인과 서로 가족의 안부를 물었던 것 같은 묘한 경험을 했다. 수초의 그 짧은 시간에는 일어날 수 없는 제법 긴 대화였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 우리가 갖는 시공간에 대한 인식이 틀릴 수 있다고. DDP의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는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작가는 “21세기 인공지능의 시대를 맞아 사람들은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등 새로운 시공간 속에서 살 수 있게 됐다. 그런 전환기적인 상황에 맞는 새로운 조각적인 개념과 방법을 찾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인체 조각을 해체해 인체가 주는 사실감을 근본부터 해체시키기로 했다. 인체를 세로로 반을 갈라 평면상의 부조처럼 만들기도 하고 인체 여러 부위를 절단내기도 했다. 그러곤 각 부분을 레고처럼 이어붙이며 합체시켰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인체 조각은 사진 속 이미지를 오려서 입체처럼 세워놓은 것처럼 비현실감을 줘서 시간과 공간이 멈춰져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런데 과거엔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던 현실을 우리는 살고 있다. 멀티 페르소나가 그런 것처럼. 김영원의 조각이 미래적이면서도 편안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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