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신한 주제만큼 취지 못 살리는 ‘노랫말싸미’

지난 10일 첫 방송된 ‘케이팝 어학당 노랫말싸미’의 한 장면. 가수 백지영(왼쪽)이 출연해 자신의 히트곡 ‘내 귀에 캔디’를 소개하고 있다. 방송화면 캡처





지난 10일 tvN 예능 프로그램 ‘케이팝 어학당 노랫말싸미’(노랫말싸미)가 첫 방송됐다. 이 프로그램은 식상한 가창력 대결의 장이 아니었다. 순위를 가르지도 않았다. 특정 출연자를 깎아내리는 악의적 연출도 없었다. 훈민정음의 서문 첫 문장을 흉내 낸 제목이 암시하듯 노랫말을 주된 소재로 삼았다. 기존 음악 예능이 다루지 않은 분야라서 참신했다.

제목에 들어간 ‘케이팝’과 ‘어학당’이라는 단어는 프로그램 취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노랫말싸미에는 7개국 외국인이 패널로 출연한다. 이상민 김종민 장도연이 진행을 맡고, 매회 새로운 가수가 강사라는 직함을 달고 나온다. 스튜디오에 모인 이들은 강사로 초대된 가수의 노래를 매개로 한국어와 외국어를 배우고, 우리나라와 타국의 문화를 알아간다.

첫 방송에서는 백지영이 강사로 나섰다. 그녀는 ‘총 맞은 것처럼’과 ‘내 귀에 캔디’로 강의를 했다. 시작에 앞서 번역기로 번역한 노래 일부 가사를 외국인 출연자들이 읊고, 외국어로 바뀐 가사를 토대로 노래를 유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과정은 출연자뿐만 아니라 시청자한테도 각 나라 언어를 경험하고, 이런저런 표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을 듯하다.

하지만 유익함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전반적으로 방송은 ‘백지영의 노래 교실’에 지나지 않았다. 백지영은 직접 노래를 부른 뒤 노래 속 화자의 상태나 기분 등을 설명하며 어떤 식으로 불러야 하는지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줬다. 간단한 지도가 끝나면 외국인들이 노래를 불렀다. 이 내용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홍진영이 출연한 2회도 ‘트로트 억지로 맛깔스럽게 부르기’에 그칠 뿐이었다.

첫 회에서 두 번째 노래 ‘내 귀에 캔디’를 배울 때에는 춤에 초점이 맞춰졌다. 댄스음악이니 그럴 만했다. 하지만 두 명씩 짝을 짓기 전 각자 춤 실력을 뽐내고 커플 댄스를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마치 명절이면 편성되곤 하는 외국인 장기 자랑 방송 같았다.

노랫말싸미는 첫 방송을 앞두고 “노래를 통해 한국을 이해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문화의 어울림을 만들려 합니다” “노래로 배우는 문화 이야기” 등의 자막을 띄우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그러나 지금까지 방송에는 교양에 보탬이 될 나라별 문화, 사회상은 얼마 담기지 않았다. 1회에서는 출연자들이 그들의 나라에서는 연애 진도를 나갈 때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 털어놓은 것이, 2회 때는 각 나라에서의 인기 있는 외모에 대한 담소가 ‘문화 공유’의 거의 전부였다.

교양 프로그램이 아닌 예능이라서 시청자들이 재미를 느낄 만한 장치에 신경 쓰느라 취지 구현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일일 강사로 모시는 가수들의 노래도 죄다 사랑 얘기일 테니 화제의 폭도 좁을 것이다. 이 약점을 슬기롭게 보완해야 프로그램의 취지가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동윤<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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