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영성 작가] 글에 담은 ‘영성의 씨앗’ 갈급한 곳에 떨어져 생명의 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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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목사입니다.” 세계적인 신학자, 저술가, 성경 번역가, 목회자로 살아온 유진 피터슨(1932~2018·아래 사진)에게 만일 “당신은 누구인가요?”라고 묻는다면 그는 주저하지 않고 “나는 목사입니다”라고 말했을 것 같다.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집필한 그가 미국 메릴랜드주의 작은 마을에 개척한 교회에서 29년 동안 성도들을 성실하게 섬겼다는 것을 잘 모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는 ‘목회자들의 목회자’로 불릴 만큼 책과 사상을 통해 절망에 빠진 사역자들에게 일어설 수 있는 소명을 회복시켜주었다. 특히 실용주의적 목회에 경고를 울리면서 “유혹에 저항하라”고 강조했으며 목회자들이 한 길을 가는 오랜 순종의 증인으로서 인내하며 십자가를 지라고 당부했다. 그의 평생의 관심은 ‘교회다운 교회’ ‘목사다운 목사’였다.
 
한 길 가는 순례자

그에겐 목회에 토대가 된 두 가지 확신이 있다. 첫째 확신은 ‘복음’은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이어야 하며 ‘목회’는 그 복음을 살아있게 만드는 일이란 것이다. 즉 복음이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서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확신은 목회는 ‘성경과 기도’로 하는 사역이란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성도들의 삶 속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져갔다. 그 방법이란 오직 성경과 기도, 기도와 성경이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귀 기울이도록 돕는 것 그리고 그들도 우리처럼 기도의 삶을 사는 동안 인격적이고 정직하게 하나님께 응답하도록 초대하는 일이다.”(‘한 길 가는 순례자’ 중)

그는 한 길 가는 순례의 삶을 살았다. 시애틀 퍼시픽대학교에서 철학을, 뉴욕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목사가 되기 위해 준비해 1958년 미국장로교단(PCUSA)에서 안수를 받았다. 이듬해 뉴욕신학교에서 성경 언어와 성경을 가르치는 한편 파트타임 목사로 사역하면서 목사의 소명을 깨달았다. 62년 메릴랜드주 작은 마을 벨 에어에 ‘그리스도 우리 왕 장로교회’를 개척했다.

유진 피터슨에 따르면 목사는 ‘일을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다. 목사는 사람들 사이에 그리고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공동체 안에 세워진 사람이다. 그는 목사들이 종종 지쳐서 교회를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것을 봤다. 그가 규명한 원인은 목사들이 복음을 성공의 수단으로 보거나 교회의 프로그램 감독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는 목회를 축구에 비유하며 “교수는 라커룸 안의 코치이지만 목사는 경기장에 나가 공을 차고 태클을 당하면서 성도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신학은 ‘영혼을 돌보는 일’이었다. 하나님에 대한 말인 신학을 하나님에게서 오는 말로 바꾸는 것이 ‘설교’라고 해석했다. 그의 설교는 흔히 훈계와 계몽을 빗대어 말하는 ‘설교’가 아닌 우리를 성서의 세계 안으로 들이는 ‘설교’였다. 무엇보다 그는 복음과 삶의 일치를 추구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인다움에 일치하고자 하는 평생의 노력입니다. 성경에 쓰인 것과 쓰인 그것을 사는 우리 삶의 일치. 그런 의미에서 설교는 그리스도의 존재와 그분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 사이의 본질적 일치를 말로 매주 증언하는 것입니다.”(‘물총새에 불이 붙듯’ 중)
 
황무지에서 찾은 영성

그의 목회의 출발은 순조로웠지만 침체기가 찾아왔다. 그는 교회 예배당을 건축한 후 찾아온 침체기를 ‘황무지의 시기’라고 표현했다.

“황무지의 시기는 너무도 많은 것들이 제대로 흡수되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교회를 ‘운영’하는 목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제도권 안의 종교 직업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느냐 무시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목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소비자 중심이고 명성 중심인 미국 문화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가장 보상받은 그런 목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회고록 ‘유진 피터슨’ 중)

황무지의 시기에 그는 밧모섬의 요한을 통해 ‘목사와 작가’라는 정체성을 찾았다.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계 1:19)는 명령에 순종한 요한에게 목사와 작가는 일관된 정체성이었다. 이때부터 유진 피터슨에겐 살아낸 성경, 살아낸 신학을 글로 쓰는 목사와 작가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내 글쓰기는 성경과의 대화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동시에 회중과의 대화이기도 했다. 밧모섬의 요한이 내게 길을 안내해 주었다. 요한계시록은 종종 영성 신학, 살아낸 신학이라고도 불린다. 나는 살아내는 신학과 성경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글쓰기를 통해 목회적 삶의 기층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회고록 ‘유진 피터슨’ 중)

그는 영성을 오늘의 언어와 이야기로 풀어내는 데 탁월하다. 그가 추구하는 영성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계시하는 대로 자신의 가정과 일터에서 살아내는 것. 그것은 일상생활을 성경과 복음의 이야기로 가져가 그곳에 정착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황무지의 시간은 6년 정도 지난 어느 시점 서서히 사라졌다. 무엇인가 달라져 있었다. 80년 그의 첫 책 ‘한 길 가는 순례자’를 출간했다. 그리스도인에게 오직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나아가는 순례자의 영성을 갖출 것을 권면하는 내용이다. 17곳 출판사의 거절 끝에 미국 IVP에서 출간된 책은 30년 지난 지금도 베스트셀러이다.
 
관광객이 아닌 순례자로

그는 하나님이 성도들의 인생에서 하시는 일을 목격하는 증인이 되고 싶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엿새가 목회의 본질을 보여주는 일터라고 믿었다. 살아가는 일 한가운데서 예배를 인도하고, 평일의 모순과 혼란 속에서 십자가의 존재를 발견하고, 평범함 속에 광채를 발견하며 무엇보다 공동체와 함께 기도의 삶을 사는 것이 ‘목회자의 영성’이라고 여겼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일은 대부분 세속적인 일터에서 이루어졌듯이 삶의 현장에서, 인내하며, 인격적으로 살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목회였다. 물론 목사는 먼저 복음을 현장에서 ‘살아내어야’ 했다. 목사에게 주어진 과업은 ‘오늘’이라고 하는 이 시간에, ‘여기’라고 하는 이 장소에서 복음을 실제로 ‘살아내도록’ 격려하는 것이었다.

그는 저술 활동과 가르침에 집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깨달음에 섬기던 교회를 91년 사임하고, 93년부터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리젠트대학에서 2006년 은퇴하기까지 영성 신학을 가르쳤다. 이 무렵 바울이 헬라어로 쓴 갈라디아서를 영어로 번역했고 이를 계기로 93년 메시지 신약 편(복있는 사람), 2002년 신구약 완역본이 출간됐으며, 영성 신학을 집대성한 시리즈 5권(IVP)이 2010년 완성됐다.

그 과정에서 그는 새로운 ‘회중’(독자)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됐다. 회중과 공동체라는 땅에 심어진 성경의 언어가 싹이 트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사는 동안 관광객이 아닌 순례자로서 살기 바랐던 그는 한 길 순례의 길을 마치고 2018년 10월 22일 이른 아침 주님의 품에 안겼다.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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