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진 기자의 사모 몰랐수다] 목사님 ‘라떼’ 대신 출산휴가 주세요

부목사 가정에 태어난 아기가 교회에서 첫 예배를 드린 날, 담임목사의 축복기도와 함께 온 성도가 한마음으로 축복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2017년 리투아니아의 잘기리스 프로농구팀은 준결승에 진출했지만 2차전에서 패했다. 경기 직후 기자회견에 나선 사루나스 야시케비치우스 감독은 아내의 출산 때문에 경기에 결장한 아구스트 리마 선수에 대해 질문받았다. 황당한 질문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은 그는 침착하게 기자에게 “자녀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없다”고 답한 젊은 기자에게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태어난다는 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입니다. 삶에서 농구가 중요합니까. 누구를 위해서죠. 당신이 첫아이를 갖는다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겁니다. 아이 탄생만큼 경이로운 일은 없습니다. 리마는 지금 천국에 있는 느낌일 겁니다. 저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생명 탄생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야시케비치우스 감독의 답변은 유튜브에서 600만뷰를 기록할 만큼 화제가 됐다.

얼마 전 첫째 아이를 출산한 후배 사모에게 문자가 왔다. “사모님, 저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요.” 이유인즉 산후조리원에 온 뒤 남편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조리원 면회가 통제돼 정해진 시간에만 만날 수 있는데 남편이 심방, 교육훈련 등 바쁜 사역으로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혼자 있는 사모도 걱정됐지만 아기도 못 보고 사역하는 목사님의 마음은 어떨지 두 사람을 위해 기도할 뿐이었다.

문득 산후조리원 시절이 떠올랐다. 혼자였던 나와 달리 다른 산모들 옆에는 늘 남편이 함께였다. 남편들은 젖병을 공용 소독기에 갖다 놓거나 신생아실 소독 시간에 아기를 데려오는 등 아내의 손발이 돼줬다. 조리원에선 내가 미혼모인 줄 알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역을 마치고 늦은 밤에 왔다가 새벽기도 준비로 매일 오전 5시에 출근해야 했으니 남편의 얼굴을 마주한 사람은 없었다.

출산을 겪으며 나는 산후 소양증(피부 가려움증)으로 온몸에 피부 발진이 생겼다. 날이 갈수록 증상은 더 심해졌다. 추운 겨울 산후풍이 걱정됐지만 조리원에서 혼자 병원을 오가며 치료받았다. 여느 때처럼 사역을 마치고 늦게 돌아온 남편은 나의 붉어진 피부에 약을 발라주며 눈물을 훔쳤다. 남편에게 이유를 묻진 않았다. 그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모들의 출산 이야기는 마치 딴 세상을 사는 듯하다. “제왕절개하고 움직이지 못했는데 남편이 출근해야 해서 언니가 회사에 휴가 내고 도와줬다.” “아침에 출산했는데 오후에 왜 출근하지 않느냐고 담임목사에게 전화가 왔다.” “출산한 것만 보고 바로 2박3일 수련회를 떠났다”는 이야기는 지금이야 웃으면서 말하지만 사모들에겐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종종 담임목사들은 “나 때는 말이야. 아이 낳는 것도 보지 못했어”라며 마치 사역자는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말하곤 한다. 하나님께 부르심 받아 사역하는 목회자에게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배우자 휴가(10일)를 차마 언급하진 못하겠다. 하지만 성경은 새로운 가정에 대한 중요함을 강조한다. “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맞이하였으면 그를 군대로 내보내지 말 것이요 아무 직무도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 년 동안 한가하게 집에 있으면서 그가 맞이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신 24:5)

일부 교회에선 성도들이 먼저 목회자에게 출산휴가를 언급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성경이 말하는 가정에 대한 가치를 되새겨보고 이제라도 목회자 가정의 출산과 육아에 대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 좋겠다.

아, 리투아니아의 잘기리스팀은 어떻게 됐을까. 남은 준결승 경기에서 모두 승리해 결승에 진출했다. 아빠가 돼 복귀한 리마 선수는 결승전에서 맹활약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목회자 가정에도 출산의 기쁨이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길 소망한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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